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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31. 2022

[일상] 다율이 코로나19 확진_격리해제 D-1

 3월 30일 기준, 대한민국 일일확진자가 42만명이 넘었다. 누적확진자가 1,270만명이나 되니, 대한민국 국민 4분의 1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불과 2년 전, 한 교인의 병원비를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1인실 기준 음압병실비와 검사비 등을 합하여 최소 3~4000만원의 구상권을 행사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어떤 지역, 어떤 종교, 어떤 세대, 어떤 직업. 타겟은 바뀌되, 경계와 혐오감은 그대로였다. 불안이 어떻게 미움을 만들어 내는지 짧은 2년 간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비슷하다는 것을 코로나19는 확인시켜줬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인류는 전쟁, 학살, 살육 등 끔찍한 경험을 반복한다. 인간이 불안의 감정을 느끼면 전두엽 활동이 감소한다. 전두엽은 '폭력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848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는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라는 청년이 철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25세의 젊은 청년은 공사중 큰 사고를 당한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1m 짜리 쇠파이프가 그의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쇠파이프가 그의 머리를 관통했음에도 의식을 찾고 걸을 수 있었다. 4개월 간의 안정을 되찾은 뒤, 그는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다만, 그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바로 폭력적이고 충동적으로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동료와 시비가 자주 붙기도 하고 참을성이 없고 화가 많게 됐다. 전두엽의 상실은 이처럼 인간을 폭력적이게 만든다. 전두엽은 우리가 '인간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이곳이 활성이 떨어지면, 감정조절이 힘들고, 충동적이며, 의욕이 사라진다. 또한 변덕이 심해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면 '전두엽' 활성이 떨어진다.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불안'은 인간이 '맹수' 앞에 놓여 있을 때 처럼, 시야를 좁게 만든다. 생각을 얼어붙게하고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한다. 이런 현상은 우울증과 불안감이 서로 맞물리며 발생한다. 이렇게 분노, 증오, 폭력이 사회에서 발화하면, 가끔 집단 광기는 발생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20세기 '테러'의 공포는 유럽과 미국에 '반이슬람 정서'를 만들어 냈다. 관동대지진에서의 타겟은 '조선인'과 '일본 사회주의자'였고, 한국전쟁이나 제주 4.3에서도 인간은 비슷한 광기를 보였다. 특정 종족이나, 집단을 완전히 소탕시켜버릴 목적으로 그 대상을 향해 살해와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제노사이드'라고 한다. 이런 인종청소는 '후대'에 돌아보면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당시의 인간은 반드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 또한 그들을 비웃으며 21세기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불안은 그렇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커다란 전쟁 뒤에는 항상 이런 전염병이 돌곤 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스페인독감이 유행했다. 이것은 1918년에 처음 발생하여 2년 간 2500~5000만의 사망자를 냈다.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때, 인류가 선택한 '제노사이드'의 명명은 '마녀사냥'이었다. 수 십 만의 희생자를 만들어낸 이런 학살은 대부분, '공포'에 휩싸인 대중에 의해서 였다. 공포는 '혐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테러와 같은 이벤트는 짧게는 1년 길게는 수 년을 지속하지만, 증오는 그 뒤로도 계속남아 수백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내곤 했다.

 '밖을 돌아다니면 위험하다.'에서 '차라리 밖이 안전하다.' 쪽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간다. 일주일에 300만에 가까운 사람이 확진이 됐다. 대다수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확진자가 됐다. 즉, 가장 위험한 곳은 '밖'이 아니라 '안'이 됐는지도 모른다. 위험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제는 대한민국이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됐다. 그렇다면 나가는 것이 안전한가. 아마 그러진 않겠지만, 우습게 생각해본다. '코로나'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는 듯하다. 다율이가 확진이라는데, 하율이는 확진이 아니다. 일란성 쌍둥이에다가, 매일 저녁 같은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즐기고 있다. 다율이가 확진 판정 받은 전날도, 당일도 하율이와 다율이는 같이 목욕을 했다. 한 우유에 같은 빨대를 나눠 마셨다. 얘들이 남기면 내가 마시기도 했다. 뭘 먹어도 항상 남기는 탓에 남는 음식은 항상 내 입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엄청나게 접촉을 해도 나는 음성이다. 다율이가 확진이 되고, 나또한 매일 자가키트를 확인한다. 또한 PCR검사도 마쳤다.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음성이다. 다율이는 '확진'이라는데 증세도 없다. 걸핏하면 열이 나는 아이다. 유치원을 다니면 사소한 계절 감기에도 몇 번을 응급실을 다녀왔다. 심지어 나이도 어려서 백신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열도 없다. 덕분에 '유치원'도 휴원하고 녀석은 집에서 'TV'를 실컷 보고 있다.

 너무 많은 확진자가 나온 탓인지 모르겠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 전화는 검사 후 다음 날, 오후 2시가 넘어서 받았다. 특이사항은 없다. 그저 일주일 자가 격리하라는 문제가 전부다. 게다가, 7일차 부터는 통보 없이 자동 격리 해제가 된단다. 일주일 후 자동 격리 해지된다는 문제하나 받고보니, 코로나19가 '유행성 결막염' 수준인가 싶다. 코로나가 오미크론으로 변이하면서 전파력만 강해지고 증상은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걸 왜 그렇게 호들갑이었나 싶다. 사실 '백신접종'을 통해 중증화를 막은 '정부 행정력'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관련한 내용에 대해는 아는 바가 없어 언급하기 어렵다. 코로나는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말은 미국을 비롯해 여기 저기서 쓰인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현상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재료인 것 만은 확실하다. '이런 것 같다.', '저런 것 같다'는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사회적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폭력성'은 분명, '부작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도 일으키는 것 같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지 못하니, 내가 극도로 예민해졌다. 내일이면 다율이가 격리해제다. 혹시나 싶어, 하율이와 '신속항원' 검사를 갔다.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돌아왔다. 이 날도 역시 집에서 자가키트로 검사를 진행했다. 역시 '한줄'이 나온다. 물론 조심은 하고 있으나 확진자 한 명 나왔다고 대형 마트의 문을 걸어 잠그고 '도시봉쇄'이야기가 나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얼마 전인데도 참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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