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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30. 2022

[철학] 인생의 목적_기시미 이치로의 삶과 죽음

 사람은 태어난 그날이 바로 죽기 시작한다. 병들지 않으면 좋지만, 병에 드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조각이다. 이별하지 않으면 좋으나, 만남은 동시에 이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 할수록 인생을 옭아 매는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사랑은 좋은 것이나, 돌아설 때는 '원수'의 모습을 하고, 존경과 감사는 긍정적인 것이나 돌아서면 증오나 실망으로 한순간에 바뀐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방법은 간단하다. '초콜렛'이나 '사탕'을 들고 서면 된다. 혹은 '큰 소리'로 호통을 치거나, 기쁨 마음으로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추게 한단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회유하거나,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통해 공포심을 주면 된다. 그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 다 자란 성인에게는 그깟 '초콜렛'과 '사탕'이 회유의 미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자란 성인에게는 그깟 '큰 소리' 호통 정도는 공포감을 주지 못한다. 사람을 나이가 들면서 '초콜렛'과 '사탕'보다 달콤한 것을 알아가고, '큰 호통'보다 무서운 것들을 알아간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피하고 싶은지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데, 가장 어려운 상대는 무엇도 원하지 않고, 무엇도 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이 마흔이 '불혹'이라고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마흔이란다. 나이 마흔이 되면 사람들은 웬만한 '미끼'를 물지 않는다. 달달한 사탕이면 언제든 꿸 수 있는 어린 시기를 지나고 '돈' 몇 푼에 '청춘'도 내다파는 젊은 시기를 지나, 웬만한 일을 다 겪고나면 나이 마흔 쯤에는 꿸만한 미끼도, 위협할 공포도 많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사람이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겪게 되는 네가지 고통인 생로병사, 그나마 다 자란 어른을 움직이는 유일한 공포다. 

 기쁨은 '마약'과 같다. 약물을 더 많이 쓸수록 내성이 생겨 쾌감이 줄고 더 많은 사용량이 필요하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분홍 소시지 전을 종종 해주셨다.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였고 대부분의 우리집은 김치찌개가 식사 매뉴였다. 김치찌개에서 고기나 두부를 건져 먹는 일 말고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그닥 없었다. 내 기억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어린 시절 반찬은 '분홍 소시지'다. 이 반찬은 나를 움직이는 아주 좋은 자극제였다. 이 반찬이 나오는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안좋은 일들도 금새 잊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적게는 몇 만원에서 수 십 만원을 하는 한끼를 먹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세상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짜장면 한 그릇값이라는 5,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먹어도 그닥 큰 기쁨이 몰아오곤 하지 않았다. 1,500원이면 거의 일주일을 먹던 분홍소시지라는 적은 투여량으로는 나를 만족 시키지 못했다. 담배농사는 옛부터 벼농사보다 수지가 맞는 사업이었다. 사람들은 배부름보다는 쾌락을 선택하곤 했다. 사람들이 쌀보다 담배를 더 많이 찾기 시작하자, 농사꾼들은 당연히 벼농사를 지어야 할 농지에 담배농장을 지었다. 그러자 국가에는 조세 문제가 발생했다. 중세부터 동양에서는 점차 이 것에 위험을 감지했다. 17세기 일본에서는 담배 금지를 수차례 내렸고, 명나라나 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담배는 꽤 질이 좋았는지 조선인들은 대부분 담배를 사랑했다. 중독의 파멸은 '청나라 말기'에서 노골적으로 들어났다. 청나라가 담배를 금지하자, 담배대신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아편을 찾아 피웠다. 처음 작게 시작한 사건의 발달은 청나라 경제를 무너뜨리고 급기야 청의 몰락까지 이어졌다.

 대부분의 쾌락은 항상 이처럼 극도의 중독성과 함께, 그 투여양이 늘어난다. 부자가 되길 원하는 마음은 1억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10억과 100억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 것이 결국 파멸로 가는 것을 경계 많은 성인들은 '쾌락' 사용의 위험을 이야기 하곤 했다. 얼마 전, 아이와 한라산 근처에 있는 '관음사'를 방문했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병들어 죽는 일'에 대해 '불행'이라고 여기지 마라. 얼핏 표면적으로 다가오지 않던 그 말의 진위가 보였다. 병들어 죽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나이들어감, 병듦,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 사람은 자신을 위협하던 공포에서 자유롭게 된다. 채찍질하는 마구에게 말이 노예처럼 쓰여지는 이유는 등을 후려치는 '매질'이 두려워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후둘겨 패도 꼼짝도 하지 않는 말은 마구에게 쓸모가 없어 버려진다. 그로써 말 듣지 않는 말은 '자유'를 얻는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을 수립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이 열등감과 무능력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과 무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것에 대한 보상 욕구는 그 사람을 움직인다. 또한 권력에 대한 의지 또한 사람을 움직인다. 원인론 적인 측면에서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아들러는 인간의 번뇌의 시작이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봤다. 즉,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대성'에 비교 기준을 두면서 '절대성'이 생긴 것이다. 지나가며 마주한 10층짜리 빌딩은 굉장히 높다고 보여지나, 50층 짜리 빌딩 옆에서는 작은 건물일 뿐이다. '관계설정'과 같은 '비교'가 사라지면,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미움받을용기'를 집필한 '기시미 이치로'의 조금더 철학적인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이 얇다. 진리와 철학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것 같지만 사실상 단순하다. 세상 만물을 모두 더하면 '1'인 것과도 같다. 책은 생각할 거리를 충분하게 주면서도 어렵지 않고 대화 형식을 적당히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시나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처럼 그의 철학의 대부분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출발한다. 일본어를 하는 그의 철학 이야기를 이처럼 서재 자리에 앉아 읽어 낼 수 있다는 행운은 일종의 독서가 주는 '축복'에 가깝다. 책의 마지막에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도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다만 마침내 한일관계가 악화되어 출간되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형식으로 출간될지 모르지만, 그의 철학과 적절하게 섞어 한국 영화에 대한 평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의 새로운 책 또한 한국어로 번역되길 고대하고 기대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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