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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07. 2022

[인문] 숫자는 정말 믿을 만한가_위험한 숫자들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은 고대 도시 우르크(Uruk)에서 발굴된 점토판에 있었다. 최초의 기록은 문학이나 과학, 종교, 철학이 아니라 '숫자'였다. "29,086자루의 보리 37달 쿠심" 이 기록은 단순하게 '쿠심'이라는 인물이 37개월 동안 29,086자루의 보리를 받았다는 뜻이다. 숫자는 이처럼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기록 이전의 시대를 뜻하는 '선사시대'의 종말은 '숫자(회계)'와 함께 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 기록에 있는 '쿠심'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이름을 아는 최초의 사람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숫자'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게 한다. '너는 이만큼을 줄께. 나는 이만큼을 가져갈께.' 따위가 아니라 다수가 합의한 약속이며 숫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임을 주고 또한 공동체가 이어 질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이 되게도 했다. 우리가 아는 최초의 도표자료는 '나이팅게일'의 자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질병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살핀 나이팅게일은 그 끔찍한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를 만들었다. 이 수치는 정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1880년에는 이 도표를 토대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해결됐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에게 설득되게 하는 힘을 가진 '숫자'는 이처럼 상호간의 믿음이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지 숫자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인지를 살펴보자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1999년 9월 23일 화성기후궤도선은 레이더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값비싼 우주 장비를 잃어버린 것은 어이없게도 간단한 '숫자' 때문이었다. 운동량을 이야기 할 때, 영국와 미국은 '파운드/초(lbf/s)'를 사용한다. 다만 국제 표준은 '뉴턴/초(N/s)다. 이런 단위와 숫자의 인식의 차로 값 비싼 프로젝트는 거기서 마무리 됐다. 현재는 미터법을 비롯해 시간이나 무게, 거리에 대한 대략적인 통일이 이뤄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통일은 세계 문명의 발전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삼국지 소설을 보면 관우의 키가 8척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나라의 주척은 23cm였음으로 그의 키는 184cm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시대마다 지역마다 '척'에 대한 기준이 달랐으므로 어떤 해석에 따르면 관우는 2m 70m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들의 키가 정확하지 않은데는 통일되지 않은 도량형의 문제가 있었다. 인식마다 그 차이가 존재했고 국가마다 같은 단위를 사용했으나 그 기준은 달랐다. 사람의 주관적인 신체 사이즈를 가지고 겨우 길이를 측정하던 시기에는 역시나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숫자를 말했다. 뿐만아니라 인구를 측정하는 단위와 거리를 측정하는 단위가 중국과 한반도가 달라서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특이하게도 한반도의 인구가 중국대륙보다 많게 보여지거나 땅도 넓게 느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숫자는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의 대군의 수는 100만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수송병이며 전투병은 30만이라는 말도 있다. 말하는 이에 따라서 '300만 대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핏 '그저 많은 사람이 출병했거니' 싶지만 이 차이는 벌써 '300만' 이다. 그냥 그렇구나 싶지만 30만이냐, 300만이냐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이 대략으로 넘겨 집는 인구는 인천광역시 전체인구인 290만에 가깝다. 모호한 것들을 분명하게 하는데 숫자는 분명 톡톡한 역할을 한다. 숫자가 만들어내는 좋은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이팅게일의 도표와 코크런의 통계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했다. 그렇다고 숫자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 아이큐를 측정했던 결과값은 결국 씁쓸한 인종 차별을 만들어 냈다. 인류가 최근까지 했던 바보같은 짓인 '우생학'또한 비슷하다. 인류는 숫자를 통해 인간을 구별하고 우월인자와 열등인자를 나눴다. 지적수치가 적게 나오는 이는 국가가 강제불임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1927년 미국에서는 사람을 강제로 불임 상태로 만드는 것을 합법화했다. 그리고 수 만의 사람이 강제 불임된 후에야 1978년 강제불임수술 관행은 불법이 됐다.

 평균과 수치화는 무척 객관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않다. 흑인과 백인의 지능차이를 숫자로 설명할 수 없으며 남자와 여자의 차이 또한 설명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시도는 꾸준하게 있어오며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수치화와 통계화하기 위해 조사자의 주관이 개입되는지의 여부도 상당히 중요하다. '행복지수'나 '만족지수'와 같이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2차원 숫자나열 중 하나로 선택하는 것도 어블 성설이다. 더군다나 가장 말도 안되는 일반화는 '평균값'이다. 만약 우리동네 마을 버스에 빌게이츠가 탑승한다면 '마을 버스'에 탑승한 전원은 평균적으로 억만장자가 된다. 대한민국 표준이라거나 대한민국 평균이라는 급여수준 혹은 생활 수준 또한 사실 모두가 공감하기 어려운 엉터리 숫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숫자가 난무하는 경제에서는 숫자를 통한 착시현상을 자주 보곤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급격한 성장을 한 것 처럼 보이거나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 이웃 국가의 경제 수준을 넘어섰거나 따라왔다고 떠드는 일까지 모두 '주관적'이다. 실제로 국가와 국민 소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 '환율'에 의한 '소득 증가'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단순히 '화폐가치'의 상승과 하락에 의해 소득이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것 처럼 보이는 현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 이웃나라 일본의 GDP조작에 대한 뉴스가 나왔던 적이 있다. 지난 8년간 경산성의 월별 경제보고서는 같은 내용을 중복 전산 처리 하는 과정에서 확대보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숫자가 난무한 경제에서도 어김없이 숫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숫자는 이처럼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예전 자동차의 베어링을 생산하던 경기도 파주 소재의 작은 회사는 투자자들끼리의 가격 올리는 경쟁을 통해 시가총액이 5,200억까지 올라섰던 적도 있다. 단순히 없는 가치의 주식을 얼마에 사겠다는 약속이 엎고 덮고를 반복하여 한 주당 가치를 올려 기업 가치 전체가 뻥튀기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확인하고 들여다 봐야하는 건지는 '숫자'를 바라보며 다시 알 수 있다. 세상에는 객관적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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