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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29. 2022

[계발] 나는 어떻게 했지?_나는 영어가 재밌다

 "형은 그렇게 안했잖아. 근데 애들한테는 그렇게 가르쳐?"

 제일 친한 친구(동생)이 어느 날 말했다.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것 처럼 멍했다. 대충 이 물음에 둘러대긴 했는데 오랫동안 친구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읽고 해석해봐!', '문제 풀고 틀린거 다시 풀어봐.', '동사랑 전치사 앞에서 사선으로 긋고 접속사는 세모 표시하면서 읽어!' 왼쪽에는 영어, 오른쪽에는 빈 칸이 적혀 있는 종이를 나눠주고 한국어 뜻을 적도록 한다. 영어 단어 암기할 때는 '어원'으로 암기한다. 교육업을 하면 학생들의 요구나 학부모의 요구를 듣게 된다. 그들의 요구를 듣다보면 강의 방식은 옆에 있는 공부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공부법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만 생각하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친구의 말이 옳았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서 상대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학습법이 바뀐 이유는 이렇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충족하기 위해서다. 학부모들은 대게 자기 아이의 부족한 점을 학원으로 가지고 온다. 그 부분을 채우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 아이가 문법이 약해서요. 독해하는 법이란 문법 체계 좀 잡아 주세요.' 학생들 또한 자신들이 요구를 가지고 온다. '이번 중간고사 시험 범위가 교과서 4단원까지에요.' 혹은 '빈칸 채우기 문제 유형이 약해요.' 이런 '니즈'를 맞추려다보니 결국의 최선은 '남들이 가르치는대로'가 됐다. 학원을 개업할 때 초심은 이랬다. 지금 우리 쌍둥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방법으로 가르쳐야겠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영어'는 내가 바라는 '영어'와 달랐다. 그들은 '점수'에 목을 메고 있었고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영어를 했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가지 결정적 이유나 방법은 없었다. 어학연수를 떠난지 6개월 후, 나는 정규 유학을 결정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학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시작한 'Bar/Club'의 아르바이트는 저녁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12시간 일하는 곳이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찾았으나 실제로 사장 님의 와이프가 한국인이었을 뿐이지, 그곳에 일하는 직원, 손님, 사장님 모두가 현지인들이었다. 사장님의 한국인 와이프는 일하는 2년 간, 두어번 본 게 고작이었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배경이었다. 한 백인 여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클럽 음악 때문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음악만큼 큰소리로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Where does it call?(웰 더짓콜!)" 그녀는 '영어를 알려주던 원어민 선생님'처럼 다정한 눈빛이 아니었다. 급하게 나에게 진심으로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나의 고개가 자라처럼 한 뼘 이상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음표 눈동자를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미국인 'Andy'가 대신 대답했다. 'It's **te'. 내가 일하는 곳의 이름이었다. 내가 아는 원어민 선생님들은 친절한 눈빛과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여기가 어디죠?라고 묻는다면 'where is here?'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Where does it call?(웰 더짓콜!)"이라니... 한 차례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암기하진 않았지만 잊혀지진 않았다. 지금까지 말이다. 어느 날은 영국인 친구들과 당구장을 갔던 적이 있다. 포켓볼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오기로 했던 '마오리 친구'가 일 때문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오리 친구는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구장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보다 큰소리로 직원에게 물었다. "Where does it call?(웰 더짓콜!)" 직원은 당구장 상호를 알려줬다. 

 어학연수를 시작하기도 전, 3주 정도 '홈스테이'를 했던 적 있다. 홈스테이 맘(mom)은 독립시킨 친 딸을 둔 이혼녀였다. 그녀는 홈스테이로 들어오는 어리거나 젊은 아시아 학생들을 친 자식처럼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그곳에 도착한 첫 날 점심식사를 해 주겠다고 했다. 유리컵에는 싸구려 오렌지 쥬스를 비우고 버터를 두른 후라이팬에 베이컨과 계란 스크램블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Where did it go?(웰디릿고)" 그러다니 "Got it(가릿)"하며 나이프를 꺼냈다. '나이프'를 찾는 것이었다면 'where is the knife?'라고 해야 하는거 아닌가? 다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외우진 않았지만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모르지만 해외 생활하면서 한국인과 자주 접하진 못했다. 한국인이 득실거리는 도시라는데 이상하게 내가 학교를 가면 그곳에는 한국인이 없었고, 아르바이트하면 그곳에는 동양인이 없었고 취업을 해도 한국인이 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다. '한국인'이 아니라 '동양인'을 보기 힘든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매장 관리'를 맡은 '관리직'을 일하던 내가 있던 업종은 '소매업(retail)'이었다. 점장이 되기 전, 아르바이트 시절의 이야기다. 한 백인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창고 재고를 확인하러 가는 나를 잡고 물으셨다. "듀예붸니 코행?" 멀뚱 멀뚱 쳐다봤다. 그녀에게 기다려달라고 하고 상사에게 달려갔다. "코행이 뭐에요?" 상사는 교포로 한국어 만큼이나 영어가 편한 사람이었다. 그는 되물었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어?","'듀예붸니 코행?' 이라고 했어요."이에 상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혼잣말을 했다. '뭔 말이지? 그럴리가 없는데...?' 상사는 직접 할머니를 찾아갔고 할머니가 다시 묻자. 상사는 웃으며 '옷걸이 Coat hanger'를 찾아 주었다. 이렇게 실수했던 영어의 흔적은 공부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았다. 한 번은 말투에 관해 지적 당했다. 한 할머니를 보고 내가 "Hi", "See you, bye"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혹은 물건을 알려 줄 때는 "Here you go"라고 했다고 했다. 이것은 반말이라 나이 많은 어르신들께 쓰지 말라고 혼이 났다.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기억'이다. 소매점에서 나는 접해야 하는 아이템의 종류가 수 천에서 수 만 가지가 됐다. 손톱깎이, 화장솜 뿐만 아니라 개목줄이나 운전연습스티커까지 아주 사소한 아이템을 모두 접해야 했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투를 써야 했고 그들은 '이름모를 무언가'를 찾기도 했다. 가령 물음표 모양의 갈고리라던지, 반짝거리는 풀 처럼 모호한 것을 찾을 때는 그들조차 영어 이름을 몰랐다. 거기서 10년을 생활하면서 나는 한국어보다 영어로 처음 접하는 물건들도 생겨났다. 가령 스마트폰 액정필름이 그렇다. 이것을 거기서는 'screen protector'라고 했다. 지금도 보호필름이라는 말을 할 때, 머릿속으로 Screen protector를 떠올린 후 '보호필름'으로 바꾸는 한단계를 거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어가 절박하던 시절, 나는 '공부'가 아니라 어쩌면 자의적으로, 저쩌면 타의적으로 환경을 바꿔야 했다. TV를 틀면 도무지 공감 안되는 재미코드의 방송이 흘러나왔고 매장에서는 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컨츄리음악이 흘러나왔다. 클럽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젊은이들이 즐겨듣던 음악이 나오곤 했다.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12시간 씩, 그 노래에 노출해야 했고 나중에 물건을 주문할 때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비즈니스를 영어로 해야하자, '영어를 못한다'라는 인식은 철저하게 감춰야 했다. 최대한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말투를 쓰려고 했다. 대화 상대가 말을 하면 항상 그 말을 이어서 따라했다. "Are you sure?"이라고 물으면 "Am I sure? yes. I'm sure."처럼 말이다. 유학 시절에는 교수가 영어로 말하면 스펠링이야 어찌됐건 필사적으로 받아적어야 했고 집에가서는 그것을 인터넷에 검색하여 수 십번씩 읽어봐야 했다. 그런 환경이라도 영어는 생각보다 쉽게 늘지 않는다. 그런데 난데 없는 '어원암기'라던지, '단어시험'이라던지, 동사, 전치사 나누고 접속사 세모라니... 친구가 나를 보기에 어떻게 보였을까. 영어는 생활이고 즐거움이고 환경이어야 한다. 이선미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은 어쩐지 좋은 환경에서 학습하고 있다고 본다. 얇은 책이지만 지난 나를 돌이키며 다시 반성하게 된다. 지난 추억에 잠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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