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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02. 2022

[인문] 고전은 왜 중요한가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독후감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3)" 태초에 '카오스(Chaos 혼돈)가 있었다. 모든 천지창조는 '공'에서 시작하여 '무(無)'와 '유(有)'로 생겨났다. 어둠에서 시작해 세상에 빛이 생겼다. 빛은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구약은 그렇게 빛이 탄생을 만물의 근원으로 봤다. 빛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생명'이 탄생하듯, 빛과 어둠이 만나야 천지 만물이 탄생된다. '카오스(Chaos)는 점차 조화롭게(Cosmos) 번영해가며 행태를 갖춘다. 그리스 로마에 따르면 카오스는 '대지(가이아)와 암흑(에레보스)로 이어진다. 대지는 다시 하늘(우라노스)와 바다(폰토스)로 나눠지고 에레보스(암흑)은 '아이테르(천공)'과 '헤메라(낮)으로 나눠진다. 우라노스(하늘)은 가이아(땅)과 열여덟의 자식을 낳는다. 천지만물은 '공'에서 시작하여 '무(無)'와 '유(有)' 즉, 빛과 어둠으로 나눠지지만 이 둘은 각자 둘로 쪼개지고 다시 그 둘은 둘로 쪼개진다. 마치 분열하는 원자가 에너지를 가지듯 수없이 '신'들의 가계도가 조개지며 우주만물이 생겨난다. 서양 신화와 철학, 세계관은 이처럼 신의 가계도에 의해 만물이 정의된다. 창세기 1장과 같이 '천지창조'와 '신화시대'는 서양 고전의 뿌리다. 그리스 로마 속의 고전들은 '역사'와 '신화' 사이를 오간다. 그 경계선에 걸쳐 있는 전쟁이 '트로이 전쟁'이다. 역사는 이 전쟁을 기록하고 있으나 이 전쟁에는 '신'의 개입이 있다. 이것의 역사성에 대해 고민이 되는 이유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조선 건국에 '신'이 개입이 있다. 환인, 황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가계도가 건국신화에 등장한다.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은 국가구성원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확립시킨다. 사피엔스를 집필한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다수를 결집시키는 상상의 매개물은 국가와 국민을 결집시킨다.


 서양과 동양에서 '신'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비슷한 시기에 역사에서 종적을 감춘다. 기원전 2333년, 하늘을 다스리는 신의 아들인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줌과 마늘 20알을 주고 100일간 굴 속에서 빛을 보지 말라고 한다. 이를 성실하게 지킨 곰은 삼칠일(21일)만에 인간 여성(웅녀)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를 믿거나 말거나 인간의 역사는 고대가 지나며 '신'의 개입이 사라진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 받는 여러 문학과 예술 작품 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특징이 있는데,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며 '신'의 개입이 사라지고 '이상 자연 현상'이 극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건데 이야기 전달 방식의 변화 때문으로 보여진다. 문자가 없던 시기, 기록 방식이 온전치 못할 때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역사와 이야기를 전했다. 세세한 사항을 모두 전달하기는 어려웠음으로 상징적인 형태로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는 극적으로 변하고 단순화되고 상징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 중국 후한 중기의 환관으로 알려진 '채륜(50년?~121년?)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절차 상징성보다는 사실에 관한 역사의 기록으로 변해 간다. 채륜이 관직에 있을 때, 만든 황실이 물건 중에는 '종이'가 있었다. 그렇게 사실 기반의 역사가 기술됐다. 지금 시대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보급 됐다. 그럼에도 '고전'이 주는 '축약성', '상징성'에 대한 향수는 있다. 보여지는 사과를 '보여지는 사과 그대로'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추상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감상하는 이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는 추상파 미술처럼 말이다. 곧이 곧대로 작가가 절대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미술보다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미술이 더 각광받는 세상에서 무궁무진한 해석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고전은 더 매력적인 기술법이다. 이름 어려운 서양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동양 고전의 불편함도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문학적인 가치로는 충분하다.


 구성원을 통합하는 정당성은 그 자체로만 사용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국뽕'처럼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사상은 '선민의식'으로 발전해서는 안된다. 뉴질랜드 마오리 신화에도 그들만의 정당성은 있다. 그들은 하늘의 신, 랑기(Rangi)와 대지의 신, 파파(papa)에서 시작한다. 일본 신화에서는 아마테라스라는 태양신이 등장하고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 있는 '마사이족'은 세상을 창조한 엔카이(신)의 자손이라고 스스로를 믿는다. 고대 중국에서는 '천자'만이 옥새를 사용했다. '옥새'는 '하늘의 뜻을 대신 이행하는 결재 도구'다. '동아시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이 '최고통치자'의 권한을 '하늘'로 두었는데 이로써 '옥황상제'의 아들인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고로 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랑케로 분류되었다. 그 뿌리를 '하늘'에 두는 것이야 말로 '세상 만물'의 기원이라는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고전은 이처럼 '구전된 이야기'와 '기록된 이야기'의 중간 어딘가에서 '문학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무한대로 열리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고전은 읽는 사람과 해석하는 사람에게 그 여지를 얼마든지 열어둔다. 고대의 지혜들은 후대에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로 넘쳐났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신'의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이야기는 거리나 시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약 3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문자가 발견된 것은 고작 5천년 전이다. 자그마치 인류의 지혜 중 85%는 기록으로 전달하지 못했고 이라크 지역 우르크에서 고작 점토판에 갈대로 긁어 회계를 기록한 것이 고작 남루한 시작이다. 그마저도 5천년 전이다. 제대로 된 문자가 발견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며 고작 10%만이 기록으로 담아 냈다. 고전이 담고 있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심오하고 깊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14가지 키워드에 따라 서양고전과 동양고전, 중국, 한국, 일본의 고전을 해석하고 그에 따른 교훈을 담아 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일상과 고민을 조금 위로해 준다. 역사는 반복한다. 지금 일어난 일들은 옛 조상들이 이미 겪었던 일들의 변주이고 반복이다. 고전을 이해하는 것은 더 넓은 세계를 통해 지금을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아직 내 나이는 50이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은 어느 시기에건 인생을 돌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전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열린 해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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