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ul 03. 2022

[일상]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_유튜브 700명


군에 있을 때, 말년 병장은 '컴퓨터활용능력'을 공부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들은 말했다.


 "그거 갖고 있는 사람 너무 흔해서 메리트가 안 될텐데?"


말이 끝나고 그 말에 공감했다. 기왕 공부할거라면, 토익이나 기능사자격증 따위가 좋다고 첨언했다. 그말에 공감했다. 그러자 병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있어?"


그러자 내무반은 조용해졌다. '~하다더라'라는 경험없는 조언이 '현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고 깨닫는 순간이다. 실제로 70명이 넘는 내무실에서 해당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병장은 한 마디 뒤에 대답이 없자, 다시 책에 눈을 두었다. 자기 생각이 확실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오롯하게 '경험'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옆에서 '돕는다'는 핑계로 첨언하며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주변인의 눈빛과 목소리는 진심이겠지만 '고등어의 생존법'이 '다람쥐'에게 적용될리 없다. 사람과 상황마다 그 종류는 각기 다르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조언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No, Thank you'하라는 얘기다. 혹은 'Thank you, but no'도 좋다. 진심까지 '유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타인의 선의를 치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가면 그만이다. 유튜브를 시작한다고 하자, 유튜브는 레드오션이라고 했다. 3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포화 상태라 했다. 다만 유튜브는 작년에도 포화였고 재작년에도 포화였다. 역시나 올해도 포화라는 말을 할 것이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포화라는 말이 떠돌 것이다. 유튜브가 포화라고 말하는 이들은 채널을 운영하지 않거나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람은 어쩐지 자신의 두려움을 타인에게도 전달하고자 애쓴다. 아마도 이는 공동체 생활에서 경계를 서던 호모사피엔스의 사회적 본능 일 것이다. 함께 하는 무리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어 경계심을 높여주면 개인과 집단의 생존률은 언제나 높아진다.



 어부는 게를 잡으면 뚜껑이 없는 양동이에 보관한다. 게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아둥바둥치자 이를 본 사람이 물었다. 


"뚜껑을 덮어 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어부는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한마리가 양동이를 기어 넘으려고 하면 다른 게가 물고 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추악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지'나 '선의'가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무지인 경우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절대 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제 막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든다면, 이 사람은 자신을 구하려고 온 사람의 머리를 온 힘으로 물속에 쳐박아 버릴 것이다. 구하려 온 이의 머리를 물 속에 박고 한 호흡이라도 더 들여 마시려는 발버둥은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라, '본능'과 '무지'의 영역이다. 블로그를 시작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요즘은 영상 매체 시대인데 블로그 하는 사람이 요즘 어딨어?"


유학을 떠날 때도 친구녀석은 말했다.


"요즘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메리트 없어."


 출판계약을 했을 때도 주변의 시선은 이랬다.


"요즘 웬만하면 다 유튜브에 나오는데 책읽는 사람이 없죠."


 수출이 진행되기 전에도 누군가는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거면, 너도 나도 하고 있지."


 그러나 '요즘'은 그 시대가 아니라고 조언한 이 역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으며 나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믿지 않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은 일을 행하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


내가 아이의 아빠가 됐을 때, 부모님께서 명필가에게 부탁하여 선물하신 힘 있는 문자는 그 이후로 나를 자주 위로 했다.



  하고 안하고는 '나'의 영역이고, 되고 안되고는 '신'의 영역이다.


나는 '신'의 영역에 관여할 수 없고, 반대로 신 또한 '나'의 영역에 관여할 수 없다. 목표를 설정할 때, 나는 '~되기'의 설정을 하지 않는다. '~하기'의 목표만 설정한다. '신의 영역'에 관여하려는 순간 엄청난 번뇌가 동반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루어진다'라고 동화같은 말을 하지만, 열심히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걸어서 '달나라'가는 이야기나 많이 먹고 15m로 자라나기 등도 마찬가지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814만 번의 실패 뒤에 한 번의 성공 밖에 경험할 수 없다. 결과는 '신'의 몫이다.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1일1영상 업로드를 시작한지 20일이 지났다. 꾸준하게 영상을 올리고 있으나 영상 조회수는 기껏해봐야 10회다. 어떤 영상은 이미 보름이나 지났음에도 2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꾸준하게 하다보니, 어떤 영상은 갑자기 조회수가 5400이 되기도 하고 관련 영상들이 같이 뜨면서 수 일만에 500명이던 구독자도 700명에 가까워졌다. 결과에 집착하면 성과가 아니라 조급함이 쌓인다. 빨리 이뤄야 하는 조급함은 포기를 쉽게 만든다. 포기하는 순간까지 실패는 실패가 아니므로 그저 '무시'나 '조롱'에도 꿋꿋하게 가는 일을 간다. 그러다보면 될수도, 안 될 수도 있다. 다만 '했다'라는 나의 영역에서의 성공은 이룰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계발] 습관처럼 출근하고 있는가_왜 일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