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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02. 2022

[계발] 습관처럼 출근하고 있는가_왜 일하는가

 본질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방'에 그친다. 그것에는 철학이 없다. 철학이 없다면 의미를 잃는다. 의미가 없다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성장욕구가 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1차적으로 생리적 욕구가 있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 배설 활동과 같은 욕구를 말한다. 그 상위로 안전의 욕구가 있다. 위험,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고 안정을 추구한다. 이 생존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인간은 관계의 욕구를 가진다. 애정, 친화, 소속감을 추구한다. 다음으로 존경, 승인, 지위, 명예에 대한 관계와 소속의 욕구가 있다. 관계와 소속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가장 상위에는 '자아 실현'이 있다. 이는 '성장욕구'며 자기 완성이나 보람을 추구한다. 이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위에 결핍 욕구를 가지고 상위에 성장의 욕구를 가진다. 인간이 점차 고차원적인 욕구를 갖게 되면서 '생존'을 넘어 '성장'으로 나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성장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의미없는 '가상 현실'의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기도 하고 '조회수'나 '좋아요수', '공감'과 '팔로워수'에 집착한다. 꾸준하게 성장해야 하는 '욕구'를 기반으로 '자본주의'는 꾸준하게 성장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게 역사의 자리를 내어 놓은 이유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성장'을 기반으로 한다. '유지'가 아니라 '성장'이다. 끊임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성장해 온 '자본주의'와 길을 같이 한다. '기업성장'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최고의 꽃인 '기업'은 역시나 '성장욕구'가 충만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돈 때문에'라고 대답한다면 앞서말한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하위 욕구에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넘어 '소속감'과 '존경감'을 느끼고 '자아실현'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일'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공부'를 하는 학생의 경우, '혼나지 않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혹은 '그저 해야하니까'와 같이 겉모습을 모방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를 키울 때,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체벌을 통해 '생존욕구'를 자극고 훈육하고 있진 않은가. 결국 모든 일에 '철학'이 근본적으로 버텨줘야 한다.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고차원적인 본능'에 근거하여 해결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고자 하는 일에서 성장에 이른다. 공부하는 이는 '자아실현'과 '자기완성'을 위해 지식을 추구하고 있는가. 육아를 하는 이는 아이의 성장 욕구를 자극하여 자립적이고 온전한 인간으로 길러내고 있는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일이 '돈' 벌고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을 넘어 자기 성장의 욕구가 충족되는가. 우리 인생은 정말 중요한 것만 하기에도 턱없이 짧다. 그저 생존해 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이기에 인생은 짧다. 짧은 생의 기간, 넓힐 수 있는 시각을 넓히지 못하면 너무나 큰 손해다. '왜일하는가'의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부도 직전의 중소기업에 간신히 취업하여 세계 100대 기업 중 하나로 길러 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하는 '기민한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돈'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으며 상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최고'가 되는 것보다 '완성'이 되는 것을 우선시 하던 그는 '경쟁'을 넘어 '자기실현'과 '자아발전'으로 확장했다. 누구보다 위에 있음으로 만족 하는 것을 벗어나,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완성단계로 나아가는 그의 철학에서 '왜 일해야 하는가'의 질문은 이미 해결됐다.

 앞에 있는 경쟁자를 넘어서고 죽지 않기 위해, 겨우 생존해 나가는가. 혹은 온전하게 스스로 성장하는가. 앞서 말한 '아나모리 가즈오'에 따르면 인생의 방정식은 존재한다. 인생과 일은 <능력 x 열의 x 사고방식>로 되어 있다 능력은 중요하고 열의도 중요하다. 다만 모든 것의 열쇠는 사고방식이다. 마지막 값이 마이너스라면 아무리 능력과 열의가 무한대로 높아져도 해는 '음수'로 바뀐다. '사고 방식'은 '-1'만 곱해도 방향자체가 틀어진다. 사람이 생존욕구는 역시나 중요하다. 다만 거기서 머문다면 우리는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성장'을 기반으로 한다.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퇴보다. 학창시절 무섭게 공부하는 친구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너는 이미 전교 1등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남들보다 4배는 해야 되더라고...". 1등을 놓치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진척시키고 나면 사실상 시험 몇 개에서 1등했는지, 2등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그 정도 범주에 있는 이들은 비슷한 결과를 가지고 간다. 반에서 15등을 했는지 30등을 했는지도 중요치 않다. 숫자는 '자아'와 별개의 것이다. 치열하게 스스로를 경쟁으로 몰아세워 열등감을 자극하고 인생을 불 태워 200등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커다란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삶은 결국 '시험 성적'이 아닌 '철학'으로 결정된다. 10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매년 5명의 강사와 학생이 목숨을 끊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들은 성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살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 카이스트에서도 4~5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그들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치열한 경쟁에 행복을 박탈 당했다. 자신의 기준점을 타인과의 숫자로 결정지은 비극이다. 끝까지 밀어 넣은 생존에 대한 위협은 생존과 연결되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대답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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