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꾸물 꾸물한 게 시원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게 이상한 날이다. 우리 집은 농장과 바로 붙어 있다. 농장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탈 필요도 없다. 집에서 나와서 바로 고개만 돌리면 하우스 시설이 되어있다.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내가 살던 동네는 아주 산골이었다. 물론 지금도 시골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경운기나 화물차 몇 대가 아니면 자동차가 지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로등이나 전봇대 조차 없었다
오죽했으면, 유선 방송이 너무 보고 싶던 어느 날 아버지께 여쭤 보니, 우리 집은 전봇대가 없기 때문에, 사비로 전봇대를 세우셔야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공무원의 대답을 들었을 정도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집에서 나와 북쪽을 바라보면,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도 부동산이 아무리 핫하지만, 이런 시골까지 과연 사람들이 살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 조차, 분양이 너무 활발해서 경쟁이 치열한 수준이라고 했다. 지금은 건물이 슬슬 올라간다. 예전 감귤 밭이었던 공간은 하우스 비닐로 바뀌고, 하우스 비닐이거나 공장이었던 공간은 건물들이 지어진다.
지금도 이렇게 전봇대가 보인다. 제주도는 아무리 멀어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때문에, 번잡스러운 제주시나 서귀포시내를 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외곽으로 이사 와서 여유 있는 삶을 사는 듯하다. 이는 내가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 도시환경과 비슷하다. 뉴질랜드의 도시는 계획도시가 많다. 때문에 도심지와 주거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권을 도심에서 유지하면서, 집은 도심 외곽에서 한적하게 사는 것을 선호했다.
제주는 특별한 곳이다. 외국스러우면서 한국스럽고, 한국스러우면서 외국스럽다. 외국어 마을이 있고 관광도시이면서 1차 산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유롭다. 대부분의 직장인이나 공무원들 조차 개인 과수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삶에 대한 치열함이나 조급함이 없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들도 주말이면 농장에 다닌다고 했다. 모든 제주도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민들의 상당 수의 수익은 과수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본업 또한 병행한다.
일반, 밭농사보다 감귤 과수는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때문에 잔업이 많거나 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농사일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제주의 농작물은 '관리'에 가까운 생산방식으로 재배를 하는 편이다. 이렇게까지 이루는데 물론 많은 도민들이 노고와 투자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뉴질랜드는 앞으로 절대 망하지 않을 국가이다. 그 이유는 내가 살면서 본 것이 확신을 준다. 전 세계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중 중산층의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특이 중국과 인도 등의 아시아 권의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면서, 가장 수요가 증가할 품목은 다름 아닌 유제품이다.
뉴질랜드는 연교차가 적고 강수량이 고르다. 때문에 대부분의 목장주들은 그들의 양이나 소 등을 방목해서 키운다. 키운다기보다, 알아서 풀을 뜯어먹게 놔둔다는 게 맞을 것이다. 고르게 비가 내린다. 눈은 내리지 않는다. 날씨가 좋고, 더위나 추위가 없다. 잔디나 풀이 잘 자란다. 소와 양이 잔디를 뜯어먹는다. 살아서 새끼를 치고, 알아서 살아간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아간다고 하면, 아마도 인간은 AI를 다루는 정도의 역할만 하지 않을까 싶다. AI는 알아서 생산력을 증대시킨다. 어쩌면 뉴질랜드의 목축업은 AI가 가져다 줄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노동력보다 자연이 알아서 길러주는 생산력은 가히 폭발적으로 생산적이고 복지적이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사람보다 양이 3배가 많다. 때문에, 이런 많은 양의 털과 가죽은 모피나 러그로 제작되어 판매된다. 그들의 젓은 우유로 판매되고, 그들의 고기는 정육제품이 되고, 그들의 뼈 또한 아시아 권에서 팔려나간다.
앞서 말한 대로, 하우스가 집에 붙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관리가 가능하다. 날씨가 꾸물 꾸물하더니 어느새 좋아졌다. 앞서 말한 환경 때문에, 뉴질랜드는 큰 산업 기반이 없더라도 복지 국가로 성장이 가능하다. 제주도를 놀러 오는 사람들은 한라산을 올라가는 중턱 중에 말이나 소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초원(?)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몽고는 원래 초원지대이다. 지대가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정복 전쟁을 벌여 타민족을 침략해야 했다. 결핍이 만들어주는 성장의 대표적인 예로 '원'나라가 자주 거론된다. 그들에게 '말'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AI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친구이기도 했고, 이동 수단이기도 했으며, 걸어 다니는 우유 공장이자, 짐을 싫어 놓는 이동하는 화물차 역할도 했다. 그들이 죽으면, 그 사체를 포를 떠서 말린 후, 주머니에 차고 다녔다. 그들은 식량인 동시에 주거와 이동수단의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
타민족은 그 모든 것을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이 들었지만, 몽고에게는 끝없이 자라는 풀만 있으면 됐다. 그 풀 마저,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인 경우가 많았다. 몽고인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타민족의 영역으로 넓혀 나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농사를 짓을 수 있는 농토가 아닌 말들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목초지였다. 때문에 몽고인들이 점량 한 지역은 노예나 농토 따위는 필요가 없다.
그들은 침략한 지역의 백성을 노예로 삼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농업생산물을 강제로 취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농토에 불을 질러 마을과 농토, 문화를 깡그리 불태운 뒤 그곳에 잔디를 심었다. 때문에 몽고가 취하는 땅의 위도는 일정한 띠를 갖게 된다.
우리는 몽고가 점령하지 못한 두 곳을 이야 할 때, 베트남과 일본을 이야기한다. 몽고인들이 그들과의 전쟁이 간절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몽고인들은 일본으로 진출할 이유가 없었으며, 베트남의 농토가 전혀 탐나지 않았다. 그들의 땅은 잔디가 자라기 너무 습하기도 했다.
제주도민들은 선사시대부터 해안 지데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고려시대 전기에도 제주도의 농업생산력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농경지와 바다를 오가며 반농반어를 하고 지냈다. 그러다, 휴한 농작법이 실시가 되었는데, 이로 농업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농경지가 중산간 제대로 확대되었다. 중산간 지역은 해발 100~3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이 지역은 고도나 곺기 때문에 낮은 위도에 비해 기온이 서늘했다.
바로 그랬다. 서늘한 지역이 필요했던 몽고 군인, 제주도민이 일구고 있던 농경지가 목초지로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제주 중산간 지역의 마을과 농경지에 불을 놓았다. 모든 농경지가 활활 태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된 곳에서 그들은 목초지를 만들고 말을 키웠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제주는 몽골인들이 보기에 찾기 힘든 '말 서식지'였다. 위도에 맞지 않은 서늘한 기온, 그것이 몽고가 제주에 말을 키우게 된 이유이며, 말을 제주로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의 막내 이모부는 원래 사업을 하시던 분이신데, 농사가 주는 매력에 빠져 농업인으로 전업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납득이 되었다. 모든 지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가야 하고 사람이 움직여야 돈이 되는 사업의 피곤함에 비해, 농사는 조금씩 관리만 해준다면, 알아서 열매를 만들어준다고 하셨다.
이는 시스템을 만들면 알아서 자본이 수익을 만들어준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나는 앞으로 농사가 기업형으로 커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이유로는 '닫힌 세계'의 시작이 첫 번째다. 세상은 점점 자국의 문을 닫고 있다. 이렇게 서로에게 문을 닫게 되면, 찾아오게 될 가장 무서운 전쟁은 '식량전쟁'이다. 우리는 어쩌면 미사일 하나를 갖고 있는 것보다 일정량의 농토 하나를 갖고 있는 편이 전쟁에 유리한 고지를 입점하는 시기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필리핀 같은 경우 과거 농업 생산국이었다. 하지만 산업발전과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농업을 포기하고 관광산업을 육성하고자 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폭등하고, 자국의 식량을 자국에서 공급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의 4마리 용에 낄 수 있을 정도로 건장한 경제국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농사를 방만한 이후는 참으로 비참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식량의 무기화를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도 속을 들여다보면 식량 전쟁인 샘이다. 중국은 인구가 15억이나 되는 대국인데, 그 대국의 육류 소비가 급증하면서, 단백질 사료용으로 사용하던 대두의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자국의 대두 생산이 세계 생산량의 4%도 되지 않자. 중국의 대두 수입은 미국에 40%나 의존하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실제로 '식량 전쟁'이다. 미국은 중국인에게 '자동차', '스마트폰' 따위를 가지고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주요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중국인의 생존과 직결된 대두를 무기로 사용한다. 이는 중국인들의 축산업을 위협하고, 물가 폭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인다.
만약 중국이, 자신의 대두유를 자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친다면, 아마 게임의 판도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데로 중국의 대두유 자급률은 공급이 감당하지 못한다. 우량한 과실이 더욱 힘을 받고 영양가를 고급 받는다. 적과의 내용처럼 철저하게 자본 시장주의 논리대로 농업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