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날이 몹시 깨끗하다. 예전에는 미세먼지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세상의 걱정이 자리를 옮긴 듯하다. 살다 보면 비 오는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원래가 그런 것이다. 자연을 들여다보면 인생이 보인다. 모양이 비슷하지만 하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하나는 뜻밖의 행운이거나 뜻밖의 불행이 되곤 한다. 하지만 근본을 살펴보면 모두 같은 모양과 같은 현상일 뿐이다. 그제까지 화창하던 날씨는 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쏟아내던 빗줄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다시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 삶 또한 이처럼 간단한 논리로 지속된다. 자연을 벗 삼는다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날이 맑은 대로 모든 현상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며 이것이 지나고 나면 다른 장점과 단점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다고 했던가. 도망만 다니고 있었다면 그리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 험난했던 도망의 연결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내어야 한다. 몇 번의 삐걱 거림이야 있겠지만 죽어버린 살덩이를 지고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털어버리고 시원하게 달려 나가는 편이 낫다.
오늘은 일을 했다기 민망하다. 오후 일정 전까지 잠시 황금향 밭에서 작업을 했다. 두 시간 남짓했다. 일은 단순하다. 실한 열매가 더 크고 맛있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곁가지를 쳐내는 일이다. 면장갑을 곱게 끼고서 쥐방울 만한 황금향 열매 근처에서 열매로 가야 할 영양분을 빨아먹는 불필요한 곁가지를 쳐낸다. 싹으로 자르진 않는다. 어차피 싹으로 잘라도 그 부위에서 다시 싹이 난다고 한다. 매몰차지만 매몰차지 않게 다만, 영양분이 모두 소진되지 않을 정도의 짧은 허리를 끊어낸다. 공생이라고 뭣하지만 그들을 살려내며 열매를 실하게 키운다. 마치 지금 나의 인생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작업이다. 굳이 어두운 부분을 완전하게 숨기려 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그것이 나의 밝음에 들어갈 영양분의 일부를 내어주더라도 실한 열매를 얻어내기만 하면 된다. 싹을 자르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라지 못하게 더 이상 열매가 피해를 보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살면서 싹이 잘려야 했던 관계들이 있다. 관계뿐만이랴, 어쩌면 삶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 순간들은 어떤 순간에는 기묘하게 내 인생에서 열매보다 값진 기억이 되기도 했다. 자연에서 필요하지 없는 것 따위는 없다.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쓰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나의 인생의 어느 부분도 그와 닮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직은 다 자라지 못해 연두색이 되어 있는 것을 '순'이라고 불렀다. 이 순이 잘못이라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성장했던 것뿐이다. 또한 내가 그것을 잘라내는 것에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필요한 열매를 더 키우기 위해 잘라내는 것뿐이다. 어느 쪽도 상대에게 좋을 리 없지만, 분명하게 나쁜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서로 그만한 이유로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들이니까. 연두색과 초록색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순간이 끔찍이도 싫었다. 20대에는 해외에서 취업하고 소매업과 유통업에서 일해보기도 했다. 무역에 관심이 많아 무역도 해보고, 사업에 관심이 많아 사업도 해봤으며 투자에 관심이 많아 투자도 해봤다. 길거리에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종이 박스를 깔아 자판을 열고 장사도 해봤고 추운 겨울 이제 막 딴 황금향을 들고 제주의 관광지를 돌며 팔아보기도 했다. 비 오는 날에는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비를 맞으며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집도 절도 없는 해외에서 사기도 당해보고 밤낮이 바뀌는 클럽 일을 1년을 넘도록 했다. 서울 강남에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고용하는 일부터, 해외 구매 대행 회사의 클레임 담당직도 했다. 해외에서 진행하던 JYP 오디션에 참가하기, 싱가포르로 감귤 직접 수출하기, 500만 원 투자금으로 1억까지 불려보기, 비율제로 진행하는 학원에서 운 좋게 1명으로 시작한 학원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도 했다. 흐름대로 살다 보니,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출발지다.
남들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쌓아가며 삶을 잇고 있다. 누군가가 평가하길 거짓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 것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겪지 못한 일들을 나는 이미 겪었으니 말이다. 행운의 총량. 누군가에게 들어올 행운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다. 뭘 해도 자잘됐다. 건방지게도 '내가 하면 된다'는 허튼 자만심이 나의 뿌리 깊숙이까지 심어져 있었다. 행운의 총량을 모두 소진했다는 생각도 못했다. 소진된 총량은 그 대가만큼 처절하게 나를 다졌다. 죽어진 초식동물의 살코기를 다지듯 뾰족한 쇠망치로 수없이 두둘겨 맞는다. 더 이상 강해질 여력이 없을 만큼 흠씬 하고 두둘겨 맞다 보니 어느샌가, 야들야들해짐을 넘어서 단단해지는 듯하다. 유튜브에서 '백종원의 일생'을 간략하게 다룬 영상을 하나 봤다. 물론 잘된 이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미화와 거품이 더해졌겠느냐만, 스스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한다는 것이 꼭 뒤처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처절하게 망하고도 지금 다시 우뚝 솟아 있는 사람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그의 순진한 말투와 해맑은 미소 뒤에 그처럼 많은 인생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방의 거울을 들여다봤다. 예전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눈빛을 둘 째하더라도 웃음이 많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긍정' 빼면 시체인 내가 '긍정'이 빠져 있으니 나는 시체였던 모양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에게도 아직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이 자각됐다.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한다. 내 나이가 어느 정도가 되고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시련이 감정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추억이 되었을 때, 내가 짓는 웃음으로 나의 모든 어둠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 일과를 마치고 나는 다음 일과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배고픈 유학시절은 처절했다. 백인 키위 아이들이 클럽에서 파티를 마치고 남겼던 피자와 딸기를 집에 싸가 먹기도 했고 세탁할 돈이 없어 세숫비누 하나로 빨래와 샤워를 마쳤다. 클럽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아파트 청소와 그래머 스쿨 청소 그리고 정원 관리 일을 했다. 하루 2시간도 자지 못하는 날이 허다해서, 잠에 들 때는 일부러 침대에 눕지 않았다. 왠지 침대에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잠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행운의 총량이 그랬다. 그런 처절한 고통의 시간을 빠져나온 뒤, 나는 지금도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력을 몇 개 만들었다. 크게 대단하진 않지만 그것들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시켰다. 쪼그라져 있던 행운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며 힘들었던 순간의 배 이상을 비상했다. 지금 나는 쪼그라져 있다. 심각하게 아주 깊게 깊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은 언젠가 내가 비상할 그 날의 탄성이 되어 나를 더 멀리 높게 보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긍정 빼면 시체이던 지금의 이 썩어가는 시체 속으로 긍정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어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