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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22. 2022

[웹 소설] 피싱 (1화)

늦은 오후,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이현우 씨 되시죠?

목소리는 차갑고 억양이 없다. 

“혹시, NS 은행 계좌로 입금된 금액이 조금 있으셨을 텐데.. ”

그는 조금 뜸을 들이다. 말을 잊는다

“사용하셨죠?”

 

이현우, 36살의 대한민국 평범한 남성이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하게 된 수학 강사일을, 벌써 10년째 하고 있다. 비율제로 지급받는 급여 때문에, 수업료은 불안정했다. 학생이 많을 땐 꽤나 괜찮은 수입을 갖고 있다가, 수 년 전 부터는 급격하게 수입이 줄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누구시죠?”

  통화 너머로 묻는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수 개월 전부터 수상한 일이 생기더니, 오늘은 이런 전화도 받게 되었다.

***

“요청하신 800만 원 인출 되셨습니다.”

은행 여직원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이 돈이 어떤 출처로 왔는지는 관심이 없고, 또 어디에 쓰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여직원은 방금 인출된 돈 뭉치와 함께, 체크카드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파란색 체크카드, 그녀의 친절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출된 돈을 수학 책들이 들어있는 책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 해, 도시의 여름은 매우 더웠다. 에어컨이 고장 난 원룸 방에 뒹굴고 있느니, 수업을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여자친구가 없는 그는, 괜히 외출할 일도 없었고, 딱히 잡을 약속도 없었다. 그저, 밖을 외출하는 일은, 학원 강의를 갈 때만 있었다. 필요 없다는 강의를 굳이 보충해 준다는 명분으로 잡았다. 강의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따분했다. 그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자습이나 시켜놓고,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게 일과였다.

 핸드폰 게임을 너무 오래 했는지, 핸드폰이 방전되었다. 중요한 순간에 꺼진 핸드폰에 화풀이를 한다.

‘에이~ 중요한 순간에!’

 책상 서랍에서 핸드폰 충전선을 찾아본다. 몇 번을 뒤적거리자, 엉켜 있는 핸드폰 줄이 나온다. 대충 핸드폰을 충전선에 연결하고는 플러그를 꼽는다. 

“야! 선생님 담배 한대 피고 올 테니까, 아까 시킨 거 다 풀어놔”

이미 엎드려 자고 있는 애들에게 괜히 화풀이 하며, 불 붙이지 않는 담배 하나를 물고, 학원 뒤편으로 걸어간다.

 강의는 한참, 소문이 나서, 인기 있더니, 요새는 그 녀석 때문에 학생의 발길이 뚝하고 끊겼다.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면, 임용고시나 볼 것이지, 무슨 학원 선생을 한다고 설치고 있어‘

매일 마주치는 그 녀석의 얼굴을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에 고개를 돌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녀석이다. 서글 서글한 인상에, 훤칠한 키, 외모도 반듯하다. 그는 친절한 성격 탓에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 녀석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갖고 싶은 것들이었다.

 녀석의 얼굴을 보자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예, 오셨어요?”

대충 씁쓸한 미소를 짓고, 대충 인사를 받아준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이놈의 라이터는 몇 년을 핀 담배인데도, 찾을 때마다 같은 자리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을 뒤적거리니, 그 녀석의 손이 쑥하고 다가온다.

그 녀석의 손에는 라이터 불이 켜져 있다. 현우는 그 녀석의 눈을 쳐다본다.

“아.. 이 라이터요? 오늘 오전에, 진욱이네, 어머님이 선물로 주신 건데, 무슨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시겠지만, 저는 담배를 안 피워서..”

그는 관계를 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불이 붙은 담배를 쭉 하고 빨아들였다.

“선생님 필요하시면, 하나 가지세요”

라이터는 그냥 보기에도 꽤나 값비싼 것 같았다. 녀석의 호의가 상당히 기분 나빴다.

“학부모, 성의가 있는데, 그냥 선생님 쓰시죠?”

퉁명스러운 말투가 새어 나왔다. 그 녀석이 멀쓱해한다.

내가가 그 녀석이라고 부르는 그의 이름은 진한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수재이다. 학원에는 영어 선생님으로 왔는데, 이 빌어먹을, 학부모들은 영어 선생에게 수학 과외를 따로 부탁했다. 그러다 보니, 녀석은 명목상, 영어강사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영어와, 수학을 모두 가르치는 셈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자기 전공이 아니라며, 영어 과목은 학원비를 절반밖에 받지 않으니, 더 황당할 노릇이었다. 이 녀석이 학원으로 오기 전까지, 굳건한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그 라이터, 꽤나 비싸 보였다. 문뜩, 그 라이터를 보자마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든 자신을 탓했다.

담배 한 모금을 더 빨아드리자, 재킷 안주머니에서 문자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 하나 울린다

‘띵동’

“뭐지? 나한테 문자 보낼 사람이 없는데?”

문자 메시지는 은행에서 온 입금 메시 지었다.

-NS 계좌 입금액 150,000  잔고 153,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뭐야 이건, 하얀 토끼? 호준이 녀석이 장난 치는 건가?

가장 친한 친구인 호준이 녀석이 바로 떠올랐다. 평소 장난기 만은 이 녀석은 골리는데, 아주 능숙한 녀석이다.

이 녀석은 지난번에도, 학부모를 사칭한 장난으로 진땀 나게 했었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빌려 간 돈 30만 원을 이런 식으로 갚나 보다 생각했다.

바로 그 녀석에게 전화를 건다

“야! 장난치지 말고 한 번에 갚아! 그리고 하얀 토끼가 뭐냐? 촌스럽게”

전화를 받자마자 그 녀석에게 쏘아 붙인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너 낮술 했냐? 이게 날이 더워지니까, 헛소리를 하네, 나 바쁘니까 끊어”

‘뚝’

그 녀석에게 또 당하면 인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피식’하고 웃는다. 

“얼씨구?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내가 다시 한번 돈을 빌려주나 봐라, 이 예의 없는 자식”

담배를 꼬나 물고, 혼잣말을 하며, 문자 메시지를 쓰고 잇는데., 진한이, 이 녀석이 뻘쭘히 서있는 것이 보였다. 진한을 쏘아보며 말한다.

“수업 안 들어가세요? 애들 와있던데?”

“아! 들어가야죠!! 선생님 요즘, 다들 불경기잖아요. 다들 학생이 줄었다고,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선생님도 힘내세요.”

그 녀석은 눈치 없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온다.

“예, 예, 어서 들어가세요”

***

“야 다 풀었어?

교실문을 열며, 떠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소리 친다.

아이들은 금세 다시 제 자리로 돌아 앉는다. 녀석들 주말에 불러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 더운 원룸 방에서 혼자 궁상을 떨고 있느니, 이 녀석들과 보충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참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 김홍철, 너 저번에 친구 대리고 온다는건 어떻게 됐어?

학생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시작해 본다

“너 임마, 저번에 친구 놈 하나 데고 온다고 안 했냐?”

홍철은, 눈을 멀뚱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진한 선생님한테 갔죠. 우리 학원을 다닌다고 했지, 이 수업 듣는 다곤 안 했는데요.”

녀석 눈치가 없다.

“그.. 왜.. 지난번에 말했잖아.. 수학이 약해서, …”

‘띠딩’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로 확인해 본다,

-NS 계좌 입금액 300,000  잔고 303,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호준이 이 녀석, 어차피 다 보낼 거면서, 번거롭게 하네?’

안 그래도, 요즘 통장 잔고가 30만 원 이상이 있던 적이 없는데, 오늘은 30만 3천 원이나 있다. 돈이 들어갔다 하면, 바로 바로 빼가는 채권자 놈들 때문에, 항상, 몇 만원 짜리 잔고가 고작 이었는데, 

‘띠딩’

-NS 계좌 출금액 303,000원 잔고 0 출금 자명: 대한 캐피털

‘그럼 그렇지..’

잔고가 들어온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이 망할 놈의 채권자들은 귀신같이 출금해간다.

‘띠딩’

‘띠딩’

‘띠딩’

‘띠딩’’

갑자기 문자가 계속 온다.

-NS 계좌 입금액 300,000  잔고 300,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NS 계좌 출금액 300,000원 잔고 0 출금 자명: 대한 캐피털

-NS 계좌 입금액 500,000  잔고 300,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NS 계좌 출금액 300,000원 잔고 0 출금 자명: 대한 캐피털

하얀 토끼로부터 30만 원과 50만 원이 들어왔다. 총 110만 원이 입금되었다. 물론 대출금으로 바로 나가긴 했지만, 예고도 없이 잔고가 있으면 바로 빼가는 이놈의 채권자 때문에 당최, 생활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띠딩’

‘띠딩’

‘띠딩’

‘띠딩’

갑자기 또 문자가 계속 온다.

-NS 계좌 입금액 800,000  잔고 800,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NS 계좌 출금액 800,000원 잔고 0 출금 자명: 미래 캐피털

-NS 계좌 입금액 1,500,000  잔고 300,000 입금자명: 하얀 토끼

-NS 계좌 출금액 150,000원 잔고 0 출금 자명: 한시름 캐피털

‘뭐지?’

하얀 토끼로부터 230만 원이 추가로 입금되었다. 물론 캐피털 이놈들이 다시 빼 가긴 했지만, 하얀 하얀 토부 터 340만 원이 돈이 입금되었다.

내 한 달 급여보다 많은 금액의 돈을 호준이 녀석이 장난 친다고 입금할리는 없다. 바로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따르릉, 따르릉”

몇 번의 상담원 연결 과정을 거치고, 상담원 연결이 되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항상 좋은 일 가득하기를 바라는 NS 은행 상담원 고미연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아.. 예.. 다른게 아니고, 지금 제 계좌로, 자꾸 돈이 입금되는데요. 제가 사용하려고 한건 아닌데, 캐피털에서 좀 빼가서요. 확인 좀 해주세요”

다시 시끌 벅적해지는 학원을 벗어나 담배를 피우던, 학원 뒤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상담원이 이래저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전에 출처를 모르시는 돈이 입금됐다고 하 셨는데요 확인해 보니, 입금 계좌가 ‘이현우 씨로 되어 있는데, 본인 아니신가요? 우리 마을 은행 계좌번호가 381-20053-11154 맞은 신가요?”

“그건 제 계좌는 맞는데요. 안 쓴 지가 10년도 넘었어요. 중요한 건, 그 계좌에 돈이 없고요. 그리고, 송금한 적이 없는데요.”

상담원은 대답했다.

“혹시 가족 분께서  송금을 하셨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들어온 출처는 확인 되서, 문제 없이 입금 되신걸로 보이세요.”

이상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 마을 계좌를 확인해 보았다. 

-통장 잔고: 13,524,157,000

‘뭐… 뭐야? 이거’

현우는 가물어 칠 듯 놀랐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래내역 조회를 해 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하얀 토끼라는 입금자 명으로, 많게는 900만 원, 적게는 10만원 씩, 십 년 가까이 매일같이, 적게는 한번 많게는 서너 번씩 입금 내역이 있었다.

‘뭐지? 이건?’

어차피 오늘 수업은 보충이었다. 대충 강의실 문을 열고 애들에게 소리친다

“야! 오늘 보충 끝. 집으로 돌아가 이제”

원룸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잊게 지내던 통장과 체크카드를 찾는데. 10년 전에 만든 카드와, 통장이었다.  그것들을 들고. 은행으로 바로 뛰어갔다.

“요청하신 800만 원 인출 되셨습니다.”

은행 여직원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이 돈이 어떤 출처로 나에게 왔는지는 관심이 없고, 또 어디에 쓰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여직원은 방금 인출된 돈 뭉치와 함께, 체크카드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파란색 체크카드, 그는 그녀의 친절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출된 돈을 수학 책들이 들어있는 책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의 눈은 불안해 하면서, 당황스러워 하는 눈빛 이었다.

그렇게 시작 되었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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