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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23. 2022

[수필] 3번의 탈북에서 국회 보좌진으로_아오지까지

 1925년, 미국인 선교사 C.A 헤이스머는 평안남도의 안식교의 병원장이었다. 그는 과수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한 조선 어린이가 그의 과수원에 들어 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수원의 사과를 훔쳐 먹는 것을 발견한다. 조선 어린이의 '과일 서리'를 용납 살 수 없던 그는 12살 김명섭 어린이의 이마에 염산으로 '도적'이라 낙인 찍어 버린다. 그는 사과 값을 물어달라고 가족에게 요청했다. 이 비상식적인 사건은 1년 동안 묻혀있다가 일본인 검사가 문제를 삼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미국인 선교사는 병원에서 해임됐고 본국으로 추방됐다. 시대가 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일화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일제 강점기'는 탄압의 역사여야만 한다. 미국은 영원한 '우방국'이어야만 한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어야만 한다. 분명 그래야만 하는데, 실제 역사나 사건을 보면 반드시 그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느 시기에는 맞고 어느 시기에는 맞지 않는다. 비슷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1921년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의 이야기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 도쿄로 향한다. 그리고 하숙집을 운영하는 일본인 주인 부부와 말다툼이 일어난다. 결국 '이판능'은 그 자리에서 일본인 두 부부를 살해하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의 도쿄 시민을 죽인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는다. 이 재판에서 일본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형량을 7년 6개월로 감형받았다. 십 수 명의 일본인을 죽인 조선인이 7년 밖게 받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가 주장하던 '정신착란'도 받아들여 졌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문제가 '감형'의 원인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일본 순사가 무고한 조선인을 쏴죽이는 소설과 영화에서는 도통 설명되지 않는 일화 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편견에서 자유로운가. 언젠가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황당한 답변을 본적이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 중 어느 곳이 선진국이냐는 질문이었다. 두 국가를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답변이 궁금했다. 들어가 봤다. 답변에는 자신을 '뉴질랜드 이민자'라고 소개했다. 뉴질랜드가 한국보다 선진국인 이유를 설명하던 그는 난데없이 '한국'이 일제 시대만 하더라도 겨우 거지국가를 탈출한 나라라고 했다. 일본에 의해 노예와 같이 핍박 받았다고 했다. 이미 해당 댓글에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던 댓글이 있었다. 나 또한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뉴질랜드'의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은 좋으나 '떠나버린 조국'을 욕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겼다. 둘다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한국'의 단점을 쓸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일본'을 미화 할 수는 없으나, '일제시대' 당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그 어떤 나라보다 압도했다. 당시 일본은 중공업은 호황이었다. 공장은 일본 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많이 지어졌다. 의외로 상당수의 공장의 공장장은 '조선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현재를 거울로 비춰진다. 일본이 나빠야만 하는 시선으로는 실제 역사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일제 강점기에 쌀생산량과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소득과 의료 보건 또한 늘어났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군대를 가면 매주 수요일마다 '정신 교육'을 한다.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이 수업은 '주적'과 '북괴의 비열한 화전양면술'에 대한 내용이 주다. 북한군과 대치하는 정치적, 군사적 상황에서 '군인' 신분으로써는 어쩌면 당연한 교육일지 모른다. 다만 자유와 사상을 억압 당한 이 군인들은 결국 '징병'된 군인들이며 길게는 2년 짧게는 1년 반이면 사회로 돌아가 누군가의 아버지로,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간다. 선생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 한달 4번, 1년 52번 전역까지 수백 시간에 이르는 교육을 받는다. 이후 통일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변화했다.'고 탓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북한과 일본은 그르고 미국과 대한민국은 언제나 옳아야 하는 논리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만큼의 진실과 얼마만큼의 오해로 가득할까. 남한으로 귀화한 탈북자들의 모두 선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총 3만 명이 넘는 탈북자 중에서는 불순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되려 대한민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를 일반화하여 '좋다', '나쁘다'라고 규정하는게 얼마나 오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틀림없이 내 어린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은 교과서에서 일본만 나오면 '일본놈'이라는 호칭을 썼다. 시간이 지나며 언제는 '북한'이 동포였다가 주적이었다가를 반복했다. 교육을 감정으로 할 때, 세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들어온다. 감정은 이상보다 상위에 있다. 그 근본은 또다른 혐오를 만들어 낸다. 이들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극긍정으로 보거나 극부정으로 보거나 둘다 왜곡이다. 정치는 간혹 '진실'과 상관없이 다수의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인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므로 진실보다는 '감정'에 더 자극 받는다. 다수결이 옳다는 '민주주의'에서 '선동'과 '세뇌'는 어떻게 다수를 다루는가. 북한의 상황은 메스컴을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곳은 우리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느 날을 닮아 있다. 미래를 앞서 온 나에게는 '공감'되거나 '동정'되는 세계는 아니다. 굶주리는 아프리카의 어떤 아이들의 모습,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에 면역됐는지 점차 '동포애'라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간다. 어쩌면 이 시대 우리에게는 북한의 '절대적 빈곤'보다는 나만의 '상대적 빈곤' 더 절실한 해결책이 필요한지 모른다. 제 코가 석자인 시대에 주변 인식할 여유가 사라진다. 어쩌면 점차 늦어지고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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