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틀 정도가 지났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바로 직전, 한라봉 점적 호수 설치를 하기로 했다. 점적호수란 물이나 영양제를 주는 호수를 나무 위에서 부터가 아니라 밑에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수분이 잘 마르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타 병충해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농법이다. 뿌리에 직접 영양제를 공급할 수 있어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경제적인 농법이기도 하다. 사실 농사라고 하더라도 굉장한 노동력을 들여야 결과물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아지기도 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비료를 화물차에 실어다가 운반기로 20kg짜리 비료를 군데군데 퍼 나르고 그것을 흩뿌리는 작업을 했었는데 앞으로는 그저 물에 녹여 점적 호수로 뿌리는 방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점적호수란 보이는 것과 같이 뿌리 근처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자재 백화점에서 가격에 따라 상품을 골라 구매하고 설치하면 된다. 작업은 부모님과 함께 진행하였다. 나는 농사의 일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30년 이상 농사를 해오신 부모님께 어깨 너머로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오며 가며 조금씩 이야기해주는 내용을 이렇게 블로그에 정리함으로써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나 또한 이후를 위해 기록해 두기 위해 포스팅을 한다.
한라봉은 이 처럼 벌써 색깔이 누릿 누릿하게 나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비슷한 포스팅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맛있는 한라봉을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표피가 심하게 우둘투둘한 한라봉은 산도가 있고 껍질이 두꺼울 수 있다. 과피가 적당히 두꺼운 한라봉이 산도가 적어 먹기 편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봉이라고 부르는 한라봉의 꼭대기는 한라봉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고 껍질을 쉽게 깔 수 있게 해 주기도 하지만, 이것의 크기가 맛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점적호수를 설치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황금향 중에서 한라봉과 레드향은 규모가 가장 적다. 내가 농사를 맡아 배우기로 하고 있는 과종은 다름 아닌 한라봉이다. 작년부터 직접 비료를 뿌리고 거름을 뿌리는 등의 일을 해 왔다. 나는 앞으로 농사에 대한 비전이 그 어떤 산업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농사재 벌'을 쉽게 접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예전 어떤 책에서 '코로나 이후 도시 디자인과 인구 분포'에 관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문명의 필수라고 익히 알고 있던 문명화(도시화)는 앞으로 비대면 사회가 기술로 급 격화되면서 불필요한 접촉이라는 인식이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은 엄청난 질병이 일어난 뒤, 문명이 구조적인 변화가 생겨 나기 시작했다.
가령 타민족과 교류에 보수적이게 되면서 도심의 내부 결속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찬란한 문명을 가진 도시들이 바이러스나 타민족과의 접촉 횟수가 제한될 고도에 자리잡기도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서의 편리함에 환멸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청담동의 30평대 아파트를 8~9억에 매입하고 산다고 치고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구조나 평수를 생각해보면 같은 가격이면 제주의 외곽에서는 그 이상의 평수를 갖고 있는 내부 집과 멋진 인테리어, 수영장에 멋진 정원까지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을 소유할 수가 있다. 발품을 잘 팔면 억 소리 나는 고급 외제차 하나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언제나 접근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도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려고 했겠으나, 우리는 이제 이마트 보다 쿠팡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습관을 형성하고 있고 재택근무를 적응해 가고 있으며 집에서 즐기는 '홈캉스'라는 말이 유행이 되는 세상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특히 물류시스템과 통신, 교통의 발전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되어 있다. 제주 구석의 의외 지역에서 5G가 터지는 이런 나라에서 '서울'이냐 '서귀포 위미'냐는 큰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할 것이다. 농사꾼은 쉽게 '노동자' 계층으로 분류할 것 같으나 실제, 자신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농사꾼은 '자산가'에 들어간다. 자산가들은 노동력이 아닌 '자본'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노동력을 대체할 '사람'이나 '기구'가 나올수록 농사꾼이 해야 할 '노동'의 강도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다.', '빅데이터'다. 뭐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이는 경제적인 방향으로 상용화될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기술만 발전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닌 이상 필요 있지 않다. 우주산업이 자본주의의 미국보다 소련의 사회주의가 더 효율적이었던 이유는 '상업성' 없는 산업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회체제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을지 좋지 않을지는 알 수 없으나, 현대판 '인클루저 운동'은 이미 사회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점적호수는 이렇게 구멍이 송송 나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이 꼬이지 않고 꺾이지 않도록 잘 풀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흙을 묻히는 지저분한 일이라고 여겨지던 농사는 따지고 보면, 고귀한 업종이다. 흙을 묻히는 것을 언제부턴가가 더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흙을 묻히는 일은 농사뿐만 아니라, 군인이나, 사업가, 국가정보기관, 운동선수 등을 포함하여 어느 산업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만 농사꾼이 주는 '촌스러움'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많은 젊은 이들이 농사를 하찮게 생각하지만 앞으로 세계의 인구는 꾸준히 100억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미국으로 부터 여러 가지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은 제일 먼저 '식량'과 '물공급'의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물과 식량이 풍부한 제주야 말로 중국과 가깝게 있으면서 중국에 다양한 농산물과 물 공급을 할 수 있는 천연자원 자체인 샘이다.
사실 서울에 전세금의 부담이 되거나 생활비나 취업이 걱정이 된다면, 정답은 농촌에 있다. 애플의 초기 주식과 같이 모든 기회는 선점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기회를 가져다준다. 서울의 전세금을 마련할 돈이면 제주의 외곽 지역에 괜찮은 위치에 터를 잡을 수가 있고 임대를 통한 농사를 시작할 수도 있다. 조금만 알아보면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기회를 받을 수도 있다. 나이가 40대를 넘지 않았다면 청년 창농인에 대한 지원도 신청할 수 있다.
농사는 자산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이다. 자산은 자산가치가 향상됨에 따라 담보대출로 다른 농지를 구매할 여지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매년 수익을 가져다주는 농지가 다른 농지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해 준다. 대부분의 사업은 '대출' 즉, '빚'으로 규모가 커진다. 규모가 커지고 운용하는 파이가 넓어지면 대출을 포함한 자산 운영이 유연해진다. 그렇게 커진 규모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국가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는 깨어 있는 농업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
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은 매 정권마다 손을 보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다소 보수적인 이런 농산물 유통구조는 매우 늙은 구조이다. 마치 종이 증권을 들고 주식을 매수, 매도하던 시대에서 HTS라는 기술 서비스가 보급되며 화장실이나 침실에서 손가락 몇 개로 수 천, 수 억을 수 십, 수 백 번 사고파는 과정이 빠르게 보급화 된 것처럼, 농산물 유통구조는 앞으로 만나게 될 플랫폼 산업의 힘을 얻어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중간 유통 없이 산지 직송하는 어플이 현재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수요자들의 문제가 아닌 공급자들의 문제이다.
오랜 기간 농업을 지켜 온 많은 농업인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부적응이나 교육이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이용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깨어 있지 못하면 그 기술은 활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로 농사는 기업형 농사가 대세가 될 것이고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농촌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시간이 점점 지나감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플랫폼에서 만나 직접 빠르고 간편하게 농산물을 전국 각지로 거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바로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플랫폼 기술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농업에 주축이 될 시기인 10년 뒤에는 아마도 지금과 같이 청과물 도매시장이라는 중간 유통이라는 과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나는 아직은 아니지만 어플 개발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플랫폼에 관한 책들도 찾아 읽는 중이다. 몇 해 전, 관련 내용을 상담받고 싶어 기술자에게 견적을 받아봤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심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봐야겠다는 사실이다. 견적을 받았을 때, 지금 그 기술이 과연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가는 기술이 맞는지 구매자인 내가 지식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코로나 19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이 시기에 어떤 사람들은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이 내가 되고 싶다. 물론 나도 대한민국의 젊은이 중 하나로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독서를 통해 무지를 지로 바꾸어 가면서 해소해 나간다. 어떨 때는, 내가 믿는 것들이 곧 현실로 이뤄질 것처럼 가슴 설레기도 한다.
과수 농사는 다른 농사에 비해 손을 덜 받는 농사이기도 하다. 밭농사라고 하면 보통 하나부터 열까지 흙에 뒹굴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주의 농사꾼들은 대부분 'N 잡러'인 경우가 많다. 'N 잡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요즘과 같은 지식 유목민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N 잡러를 꿈꾼다. 앞으로 직업의 미래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전문직이 많이 사라지고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도 의사가 유튜버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며 사업가 이기도 한 경우도 많다. 앞으로는 이런 시대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들은 주말마다 과수원을 갔다. 학교 선생님도 농사를 하고 계셨고 은행 직원들도 휴가를 쓰면 과수원 농사를 지었다. 슈퍼 사장님들도 과수원이 하나씩 있어 농사를 지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관리하는 것으로 제주 도민들은 농사를 N잡의 하나로 갖고 있었다. 이는 제주에서 특이한 일이 아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직장인'은 '직장이 본업'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제주는 '본업'보다 '과수'의 수익이 훨씬 많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직업과 돈에 유연한 제주는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할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섬 중에 하나이다.
제주 살기가 이제 유행이 지나고 많은 외지인들이 제주를 떠난다고 한다. 제주의 높은 물가와 텃새가 그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산업은 거품을 끼고 그것이 사라져 가면서 성장을 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장기 투자하고 있는 장기투자자들만이 고수익을 얻곤 했다. 예전에 압구정 배밭을 갖고 있었던 '뉴질랜드'에서 만난 한 사장님이 기억에 난다. 그는 원래 본인이 구매한 가격의 수 십 프로의 수익을 얻고 배밭을 처분했다고 했다. 자신이 원래 강남에 커다란 빌딩 소유자가 될 뻔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릇의 크기에 따른 일일 뿐이다. 100배가 올라가는 주식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초기 30%만 수익을 보고 나왔다면 나머지 얻지 못한 수익은 자신의 가능성이 아니다. 30%가 올랐다가 10%가 내리기도 하고 다시 10%가 올랐다가도 다시 50%가 내리기도 하면서 모든 자산은 성장해간다. 내가 쥐고 있던 자산이 금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 똥이라고 말해도 버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믿었던 선택에 대한 확신이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