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을 찍었다. 의미는 없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사진이라는 것이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중 찰나를 포착해 남겨두는 것일 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이나 글들도 시간이 의미를 만들어주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고전이나 유물들은 누군가가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일개 흔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시대적 상황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 옆에 위치한 하우스를 들어가 보았다. 한라봉 색깔이 많이 났다. 한라봉은 12월 말에서 1월 초 정도에 판매할 예정이다. 일괄로 상인에게 판매할지 택배를 이용해서 판매를 할지는 아지 결정하지 않았다. 올해는 한라봉의 크기가 작지 않고 균일하다. 한라봉은 택배 판매하기 좋은 상품 이기다. 과피가 두껍기 때문에 험하게 다루어도 쉽게 터지지 않는다. 천혜향이나 황금향은 택배를 보내면 마음을 졸인다. 그것들이 내가 보낸 상태로 도착할지에 대한 확신이 불분명하다.
나도 예전에 사과를 하나 주문했던 적이 있다. 사과를 받고 박스를 열어보니 사과 안은 엉망진창에 모두 깨져 있었다. 급하게 대충 껍질을 벗겨내고 썩기 전에 해치우듯 먹었다. 몹시 화가 났다. 내가 지불한 과일 값에 환불을 받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전화 왔던 고객들 중에서도 그렇게 화가 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는 분명 농가의 탓이 아니다. 배송 중 파손에 관해서는 택배사에 건의를 해야 한다. 택배사에서 파손에 대한 요청을 하기에 번거로운 일이 너무 많았다. 박스 포장 상태와 물품의 상태를 사진 찍어서 메일로 보내야 하고 담당자의 답변을 기다려야 하고 이미 부엌에서 썩고 있는 과일을 넋 놓고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혹시라도 자료가 부족하다면 환불이 안되고 과일은 썩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산지직송을 통해 과일을 구매하고 물품이 파손이 되면 화가 당장 나지만 그냥 먹는다. 어쩔 수 없다. 예전에 처음 황금향을 택배로 팔았을 때는 깨졌다고 하는 문자나 전화가 오면 깨진 물건을 100% 돈으로 환불해주거나 물품을 다시 보내주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상인에게 일괄로 판매하는 것에 비하자면 판매할 때마다 손해가 났다. 사람들에게 더 싼 값에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택배가 의미를 상실했다. 혹시라도 깨졌을 때 환불까지 해주기 위해선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고객들은 상인에게 판매하는 가격대로 받기를 원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나오는 가장 저렴한 가격이나 이마트나 농협을 방문 후 보게 된 가장 저렴한 가격과 자신이 구매한 가격의 비교를 했다. "왜 이마트에서는 이 가격에 파는데 여기는 이 가격에 팔아요?", "인터넷에는 얼마에 파는데 왜 여기는 이 가격에 팔아요?" "작년에는 얼마였는데 올해는 왜 이 가격에 팔아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시장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매해야 했다. 그 니즈를 결코 맞출 수가 없었다.
일을 하다 핸드폰을 두어 시간 확인 못하면, 얼마 후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고 엄청난 문자가 쏟아지기도 했다.
"지금 제 문자 피하시는 거예요? 물건을 이렇게 깨진 상태로 보내셨으면 환불을 해주건 교환을 해주건 하셔야지, 전화를 피하시면 안되죠!!!"
"직접 농사를 짓고 포장을 해서 보내기 때문에 바로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라고 말씀을 하시면 그제야 수긍하며 택배를 받았는데 깨졌으니 새로운 물품을 보내라고 요구하신다. 억울하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물건을 먼저 보내면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송금을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물품이 나가고 한 달 가까이 지나고 10kg짜리 귤 박스 하나가 비워지면 그때서야 입금을 하신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사실 판매하는 사람들 중 진짜로 이윤이 남겨지는 고객들은 많이 없다. 가끔 대량으로 주문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고 에누리 없이 시원시원하게 사는 고객들이 있을 때 가끔 이윤이 남는다. 그런 이유로 첫 사업을 시작할 때는 대행업체에 물품 판매를 요청했다. 상대 인터넷 중계 업 사장님은 도저히 사장가에 형성될 수 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일단 '응'했다. 하지만 무조건 '묶음 판매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택배비가 4500원 정도 하기 때문에, 원가로 판매해도 두 상품을 한 곳으로 묶음 판매를 하게 되면 박스당 4500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중개업 사장님은 정산할 때 묶음 판매 시 제외됐던 택비 배용을 정산 가격에서 제외했다. 왜 제외하냐고 따져 물었을 때, 상대 쪽에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화가 몹시 났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택배나 C to C를 하지 않았다. 몇 번의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래도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 그냥 속 편히 kg당 몇 백 원 덜 받고 상인에게 일괄로 넘겨버리는 것이 편할 일이다. 시장은 불공정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박스무게를 포함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박스무게를 빼기도 했다. 표기된 10kg이라는 무게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있지 않았다. 우리는 무조건 과실 무게만을 취급했다. 가격 경쟁이 결코 되지 않았다. kg당 몇 백 원 띄기 장사를 하는 와중에 1kg의 박스 무게는 굉장히 크다.
택배 하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매년 우리 농장의 상품을 구매해 주시는 단골 고객분들이 몇 분 계신다. 그들은 전화번호부터 저장이 되어 있다.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값을 지불하고 주변에 선물도 한다. 거의 10년 가까이 꾸준하게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 분들 때문에 열심히 지은 결과물에 대한 보상을 받는지도 모른다.
농사꾼은 이번 농사의 수확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결정할 수 없다. 당연히 가장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아이의 키가 180cm이 되기를 바란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매년 가장 맛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가장 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는 '생물'을 취급하는 일이다. 공장에서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일괄적일 수는 없다. 가끔 그러한 상품을 원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대형마트에 포장된 선물세트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격은 조금 비쌀 수도 있지만, 대형 선과 공정을 거친 제대로 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상품의 균일 성도 좋고 사후 교환도 쉬울 수 있다.
농장에서 구매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수작업으로 선과를 하게 되고 포장하게 된다. 상품이 균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과 맛이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내가 주로 먹는 농장과 소비자의 '관계 형성'이 생길 수는 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판매를 하는 일은 힘들다. 그들 중, 자신과 맞는 농장과 관계를 형성하고 얼굴도, 하는 일도, 배경도 모르지만 서로 매년 안부를 물으며 물건을 주고받는 일은 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소수와의 관계를 갖는 것이 소규모 농지 택배 구매의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