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종교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다. 얼마 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전세계 빈곤층에게 통신기술을 전파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을 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빌 게이츠는 '카톨릭 신자'다. 그는 자선 활동에 전념하며 전 세계 부호 목록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을 제외한 나머지 44명은 모두 '개신교 신자'다. 앞서 말한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도 '카톨릭 신자'다. 불교를 탄압의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불교 신자'였다. 안중근 의사와 정약용은 카톨릭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신자'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개신교'다. 스티브 잡스도 불교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개신교 신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카톨릭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아이작 뉴턴은 신학자며 종교학자였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간혹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왜 그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걸까. 어떤 종교인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것은 종교가 가진 '초월성' 때문이다. 종교의 특징은 '초월'에 있다. 인간이 설정한 한계선을 종교 가볍게 넘어 가게 한다. 모든 것을 초월해 버리는 종교의 근간에는 '죽음'도 있다. 종교는 죽음조차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을 믿는 것'이 순진하거나 어리석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가 천재라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 조차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대는 신을 믿는 이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다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다. 서울 구치소에서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를 상담해오던 '양순자 작가' 또한 카톨릭이다. 그녀는 사형수들을 상담하면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을 바라봤다. 인간은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을 관찰하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달리 본다. 죽음을 초월한다면 삶의 가능성은 무한으로 넓어진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남과 동시에 울음을 터트린다. 온갖 공포 속에서 빛과 공기마저 공포가 된다.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소년이 되며 공포는 점차 줄어든다. 한 살이 두 살이 되거나 여든 아홉 살이 되는 것 모두 나이가 드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죽음의 목전에서 두 가지 유형을 보인다. 하나는 그것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경우며, 다른 하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경우다. 여기서 어른과 비어른이 나눠진다. 수 많은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났다. 이들은 동등하게 같은 운명을 맞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다. 어차피 맞이하는 죽음에는 '순서'만 있을 뿐, 결과는 같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언젠가 땅에 닫는다. 반드시 언젠가는 땅에 닿는다. 죽음은 '중력'처럼 일방적인 결과다.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가게 될 결말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는다. '사후세계'를 믿던 다시 윤회하여 환생하던 죽음이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단계 중 하나라고 여길 뿐이다. 이들은 진짜 어른이 된다.
삶이 단 한번 뿐이라고 여긴다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목숨'이 무한대인 게임을 하는 사람과 '단판'에 승부를 봐야하는 사람과는 '실행력'부터 차이가 생긴다.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도 다른 이들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것을 먼저 안 사람은 죽음에 대해 담담하며 은행에서 번호표 뽑듯, 자신의 차례에 응당 행동한다. 어차피 놔버릴 것들에 대한 욕심도 두지 않으며, 젊은 이들가 묻지도 않은 말하고 싶어 안달하지도 않는다. 어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초월'해 있는지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초월'은 멀어진다. 살다보면 먼저 태어난 것으로 '어른'의 지위를 얻어가는 사람이 있다. 다만 모든 경우가 어른은 아니다. '나이는 많지만 어른이 아닌 경우'도 적잖게 본다. 삶에 쥐고 있는 것들은 많다. 욕심, 자존심, 허세, 체면, 물욕, 과거, 미래 등이 그렇다. 그런 것들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 '죽음보다 덜한 위기' 정도는 웃으며 넘긴다. 뜨개질을 할 때,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실을 풀어 코가 빠진 지점까지 되돌아가야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풀기가 아까워서 그대로 진행한다. 결국 완성품은 불량품이 된다.
'뭐.. 좀 다시하면 되지.'
가벼운 마음이지만 쉽게 내지 못한다. 그것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야 어른이다. '매몰'된 비용에 대한 집착도 어른이 되면 놓아야 한다. 삶에 욕심을 내려 놓으면 무서움이 사라진다. 누구나 삶에 위기가 있다. 누구나 길을 지나가다보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어둡다고 멈춰 선다면 어둠 속에 머물게 되지만, 더 가속해서 그곳을 빠져나온다면 곧 터널의 밖이라는 걸 깨닫는다. 터널 뒤에 밝은 빛을 알고 있으니 터널 쯤이야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