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80이 되면 어차피 의미는 사라진다_싱글대디

by 오인환

인생은 짧다. 서른 중반에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심오하게 빠져 생각하곤 했다. 그것이 나만의 습관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으면서 부터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다.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다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이들도 알게 됐다. 고민도 없고, 걱정도 없는 이들. 그들은 그것만 없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대비나 대책도 없었다. 쉽게 말해 그들은 대책없는 인생을 살았다. 미래와 삶에 대한 고민을 더 심오하게 하던 내가 언제나 그들보다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몇 번의 실패 끝에 알게 됐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다른 황제보다 특별하게 외향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은 역변이 많았다. 그는 황제에서 죄인으로, 죄인에서 황제로, 황제에서 정원사로 살았다. 청나라 황제도 제뜻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삶은 제자리를 맡아두지 않았다. 10년 전, 젊은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은퇴하고 간다는 나라의 도시에서 유유자적했다. 통장에 쌓이는 돈은 쓰는 것보다 빨랐다. 어느 순간부터 통장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당시 내 유일한 고민은 내 인생에서 더 나아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었다. 더 나아질 만한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었으며 그러게 나머지 60년을 살다 죽으면 되는 삶이었다. 어느 가수의 가사처럼 10년이 담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을 때, 정신차리고 알게 된 것은 20년을 떠나왔던 고향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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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시내에서 보냈다. 17살부터 자취가 시작됐다. 부모님은 건실한 농부셨는데, 일이 바쁘셔서 시내의 자취방에 찾진 않으셨다. 가끔 올라오시면 음식물 쓰레기와 설거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시고 내려가실 땐, 먹지 않을 밑반찬을 잔뜩두고 가셨다. 남들보다 빠른 독립이었다. 부모님 없이 아침을 시작하면 동생과 아침식사를 하고 교복을 꺼내 입고 나갔다. 부모님의 부재가 '불행'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17살의 고아처럼 혼자 선택하는 책임을 가졌다. 그것이 때론 좋고 때론 섭섭하기도 했다. 3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다시 군입대를 했다. 20살 남들보다 빠르게 입대를 했다. 어머니께 "군대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 군입대를 했다. 3년의 고등학교 자취가 끝나고 다시 2년을 군부대에서 보냈다. 군대는 힘든 곳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으며 사람사는 곳 답게, 역시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부대로 들어오는 입구인 위병소 근무를 서게 되면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나름 20년 인생이라고 길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처럼 굳어 있는 시골 풍경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은 내 모든 인생을 돌이켜보고도 무지막지하게 남았다. 아는 노래를 모두 불러보고 봐던 TV프로그램을 모두 머릿속으로 재생해도 그 하루 근무를 채우기 빠듯했다. 그 지루한 삶을 보내던 시기, 깨달은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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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경험이구나. 어두운 밤, 함께 보초를 서는 선임병사가 자신의 인생을 재밌게 이야기하면 시간이 금세 삭제됐다. 지나지 않는 시간을 그렇게 삭제 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상대가 "너는 재밌는 일 없었니?"라고 물었을 때, 고작 내가 했던 대답이 친구들과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영화보러 간 일이었다. 그 뒤로 인터넷을 뒤져 재밌을 만한 이야기를 찾았다. 흥미로운 책들을 읽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분명 당연한 것은 80이 넘으시고 돌아가셨던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할머니는 정정하셨으나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방에만 있으셨다. 무릎이 편찮으셨고 체력도 약해지셨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분명 짧지 않았다. 그런 날, 하루 하루는 분명 할머니께만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든이 넘은 나의 하루는 걷기도 불편하고 거동도 힘들 것이다. 손주와 자녀를 붙잡고 있기에 그들의 하루는 더 흥미로운 것을 넘쳐 있을 것이다. 통장잔고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불구가 된 시점에 떠올릴 기억과 추억이라고 확신했다. 나에게는 통장잔고를 쌓는 일보다 추억과 기억, 경험을 쌓는게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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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해외'생활은 지금은 없다. 17살부터 살아 본 적 없는 고향에 돌아와 있다. 어떤 것에 확신을 한다는 것이 극도로 부질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친구는 보험을 들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봤다. 보험?



보험..?



보험?...



음.. 보험...



40대가 되면 '암'이라는 질병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그 무서운 질병을 젊을 때 준비하라고 했다. 대책없는 인생을 위한 조언 같은 일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분명 중요하다. 미래가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누군가에게는 말이다. 분명하지만 40대가 되기 전인, 10대, 20대, 30대는 압도적으로 고의적 자해로 사망한다. 즉 젊은 이들은 40을 맞이하기 전에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암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가장 큰 보험은 '암'을 대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먼저 막는 일이다. 10~39세의 사망자 중 거의 절반은 '자살'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살고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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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삶이 '생존'처럼 됐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적 있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비교적 짧게 끝났다. 그 짧은 기간 느낀바가 있다.

"그래. 어제나 그제나, 나도 다른 누군가들처럼 자살했다치자."

통장에는 'Satachigo'라는 닉네임이 있다. 너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래, 그거 샀다치고 그 통장에 넣어 놓자."

하는 것이다. 그럼 언젠가 그 통장에 있는 돈은 나를 위한 재태크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래. 죽었다치자'

나머지 삶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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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조금 넘은 남자가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갑작스럽게 화장실을 가야하고, 식당에서는 음식을 넣어야 할 입이 셋이 된다.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농사와 사업을 한다. 모든 것은 내 몫으로 떨어졌다. 남들에게 단연코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할 사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여차 저차 살아보니, 중요한 것은 결국 '오히려 좋아'라는 워딩이었다. 그렇다. 오히려 좋다. 차라리 잘 됐다. 이또한 좋은 일이다. 80이 되어 이가 빠지고, 모든 욕구도 살아지고, 불구가 되어 아무 곳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도, 누구를 만나지도 못할 상황까지 생존하면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겪었던 고비를 하나 둘 곱씹어 볼 것이다. 그것이 통장잔고에 쌓은 숫자보다 값어치있다고 확신한다.

...

그러나

통장잔고를 쌓는 놀이도 좋은 추억이라는 반전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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