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름. 휴남동.
소설 속에 등장하는 휴남동은 실제 지명은 아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휴남동 서점. 이 또한 있을 법하지만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경험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소설은 대표성을 띤다. 우리는 커피가 인간을 마시거나 마우스가 고양이를 클릭하는 언어 와해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쥬라기 공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은 이유도 실제 불가능한 일들을 다수가 눈 감고 봐줄 만큼 설정적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다수에게 선택받았다. 다수가 공감했다는 의미는 분명 사회적 상징성을 갖는다. 다수가 선택한 '베스트셀러'를 무한적 신뢰하진 않는다. 이는 그저 다수가 선택했을 뿐이지, 나와 맞는다는 보장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의미에서 종종 읽어 볼 만하다. 휴남동 서점이라는 소설은 베스트셀러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타깃이 무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골라 선택한 이들은 자신의 꿈과 닿아 있는 설정을 좋아했을 것이고, 그 주변 인물들의 고민과 삶이 자신들의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예전 '불편한 편의점'을 읽었을 때처럼 소설은 사회를 많이 담는다. 그저 사회 비판적인 내용만 담은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는 작가가 인물을 통해 자신의 독서 철학도 함께 담는다. 주제와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차린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서점' 또한 '비즈니스'다. 책을 좋아하는 이는 훌륭한 구매자이지, 훌륭한 판매자 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비자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심취하다 보면 그 시선에 함몰되는 경우도 있다. 판매자는 물건에 대해서만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판매자의 자격 요건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시작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맥도날드의 운영진은 '셰프'가 아니고, 스타벅스의 운영진은 '바리스타'가 아니며, 애플의 운영진은 '기술자'가 아니다.
책 좋아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아마 그들이 환상을 갖는 이유는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내면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돈 벌기 위해서는 '책'파는 일보다 '술'을 파는 일이 더 효과적이다. 15,000원짜리 책 한 권이면 최소 일주일이나 한 달을 이용하는 구매자보다, 친구 몫까지 칵테일 두 잔을 시키는 고객이 다음 매출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서점이 가진 이런 특성 때문에 소설은 인물들의 내면을 중심으로 잘 서술해 나간다. 극적인 사건과 스토리라인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소설의 특징이다. 모든 걸 '열심히' 살아가는 이가 자신의 삶의 템포를 낮추기 위해 찾은 비즈니스가 '서점'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고, 적당한 음악을 들으며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정도로 살겠다 마음. 그것으로 시작한 일에 하나 둘, 자신만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가만 사회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인다. 자주 방문하는 '마트'만 보더라도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인다. 지금은 희화된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실 업무상 존재할 수 없다. 모두 밖으로 꺼내지 않는 내면을 숨기고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표면적인 관계에서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적다. 그런 의미에서 '책'과 '술'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종이와 알코올이라는 표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내면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다. 간혹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소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질문자는 가볍게 던진 질문이지만 답변자는 이 질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 골라도 실패하는 게, 책 선정이다. 가족과 친구에게도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일부 질문자는 묻는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저희 어머니 선물하기 좋은 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가벼운 질문이지만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엄청난 대화가 오고 가야 한다.
'나이는 어떻게 되고, 평소 책은 몇 권이나 읽으시는지, 관심사가 어떠신지, 심리 상태는 어떤지, 어떤 이유로 선물을 하는 건지,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떤지, 종교는 무엇인지 등등.'
난생처음 보는, 혹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이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고로 노력 대비 실패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소설 '휴남동 소설'에는 책 좋아하는 이들이 평소에 겪을 만한 소소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한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000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1000만인 이유는 그 영화가 300만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젊은 남자들의 시답잖은 농담으로 살짝 지나가던 내용은 소설 후반부에 비중 있게 다시 등장한다. 사실 가장 좋은 마케팅은 '베스트셀러'라는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샀다는 이유로 그 상품을 고른다. 고로 한 번 베스트셀러에 등극만 하면 그 상품은 몇 주고, 몇 개월이고, 심지어 몇 년이고 내려오지 않는다. 책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옵션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회비용을 버리고 선택하는 일이다. 성인이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그 한 번의 선택은 분명 리스크를 피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기호 활동에 비해 분명 저렴한 비용으로 꽤 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이다 보니, 혹여 첫 도입에 실패를 확신한다면 그 책을 읽지 않는 걸 떠나서 다시 책을 구매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일을 고르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하다. 잊힌 책들은 갑작스럽게 어떤 연예인이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그 책이 정말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책 좋아하는 이들은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래 머물고 있다. 심지어 오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고를 것이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통해 이 책은 더 오래 베스트셀러에 머물 것이다. 작가가 우려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실화될 것이다. 분명 그럴 가치는 있다. 인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책이 어떤 식으로 각색될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