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순종이 좋은거야?

by 오인환

아이가 물었다.

"우리 고양이는 순종이야?"

지난주, 유기묘 두 마리를 입양했다. 60일도 안 된 새끼 고양이가 119 구조대에 의해 구출됐다. 어미없이 철재 인큐베이터에서 자랐다. 둘 중 하나의 꼬리는 부러져 있었다. 고양이는 감기 기운이 있었고 사람을 피했다. 처음 입양하려 했던 고양이는 '순종'이었다. 꽤 비싼 몸값을 갖고 있었다. '혈통'있는 고양이라는 '이름'에 족보도 있는 모양이다. 고민을 했지만 아이와 동물보호소를 찾아가 유기묘를 분양 받기로 했다. 미리 사진으로 확인하여 회색 고양이를 골랐다. 아이가 직접 골랐다. 고른 고양이를 직접 보러 갔더니 두 마리란다. 굳이 따져 볼 것도 없이 한 어미에게서 동시에 나왔을 것이다. 고로 이들도 쌍둥이다. 두마리를 모두 분양하겠다고 했다. 분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우리 고양이는 길고양이야?"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길고양이가 뭐냐고 물었다.

"길에서 자라는 순종이 아닌 잡종 아닐까?"

대답했더니 아이가 물은 말이다.

"우리 고양이는 순종이야?"

아니라고 답했다. 아이는 순종이 뭐냐고 물었다. 6살 아이에게 대답할 만한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충 이렇게 대답했다. 섞이지 않은 거라고.

아이는 되물었다. 섞이지 않으면 좋은거냐고.

아니라고 답했다. 신이 만들어낸 종의 다양성에 따르면 무작위적으로 섞여야 한다. 잡종은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어느 환경에 유리할지 예측불가한 경우, 무작위로 섞여 만들어낸 잡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할만한 부류가 된다. 가만 보면 '순종'이라는 것이 '명예스럽다'는 것도 어딘가 모순적이다. 아이는 자기가 안고 있는 고양이가 '길고양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다.

아이에게 알려준 적 없는 '길고양이'라는 말을 아이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이는 우리 고양이가 '길고양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길고양이는 엄마가 없이 혼자 살아 남은 고양이라고 했다. 고양이가 가진 개인의 역사를 마음에 들어 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중학교를 막 졸업한 뒤부터 나를 독립시키셨다. 제주도, 그중 촌에서는 별일도 아니다. 시내로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자립한다. 어린시절 특별한 영재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당시 '자립'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이었다. 용돈을 받으면 어떻게 쪼개어 써야 하는지, 비가 오는 날 책가방과 하나 뿐인 신발이 젖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든 상황에 부모 없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온실속 화초는 관상용으로 괜찮다. 아마 부모의 관상용일 것이다. 다만 풀은 구경 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의 본질은 살아가는 것이다. '독립'은 꽤 중요하다.

우리 아이가 3살 때,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아기가 '꽝'하는 소리에 놀라면 말했다.

"바지 탁탁, 털고 일로와."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넘어진 게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털고 일어났다. 아이가 넘어졌던 같은 날, 뷔페에서 또래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넘어졌다.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모를 쳐다봤다. 부모는 놀라서 화들짝 아이를 안고 연신 '미안하다'라고 했다. 우리 아이가 그 장면을 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장면을 보고도 교육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아이도 크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리거나, 종이가 찢어져서 울 때가 있었다. 아이는 그림이 망쳤다고 했다. 아이가 그림을 버리겠다고 하자, 아이의 그림을 빼앗고 말했다.

"우와! 이거 엄청 멋있다. 여기 찢겨진 부분이 뽀인뜨인데.. 일부러 한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웃더니 그림을 이어 그렸다. 그 뒤로 아이는 종이가 찢어지면 물었다.

"아빠!, 이게 뽀인뜨야?"

그렇다고 했다. 옷이 찢어지거나 가방에 흙이 묻으면 더 과한 리액션을 했다. 아이는 '뽀인뜨'라는 말을 좋아했다. 실패는 '성공'의 뽀인뜨라고 알려줬다. 아이가 실패한 그림은 일부러 집 여기 저기에 붙여 두었다. 성공한 그림은 가벼운 칭찬을 하고 되려 실패한 그림에는 조금 더 과한 칭찬을 했다. 아이의 그림에는 실패가 없었다.

육아를 하다보면 남들이 하는 육아 방법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어쩐지 내 방식이 잘못됐다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돌이켜 나의 육아 방식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만도 없다. 남의 방식이 그럴사 해보이는 것은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획일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은 아이가 물었던 '순종'에 개념과 닮았다.

모두가 닮아선 안된다. 모두가 닮는다면 환경이 변했을 때, 일괄적으로 멸종한다. 앞으로 바뀌는 시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들처럼 키우면 잘되면 그들처럼 되지만 안되면 다같이 망한다. 내 육아 방식은 종의 다양성을 키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고민없이 잘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마 비슷한 이유로 썩어 문들어졌을 것이다.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라도 좋다. 원래 생물학적으로 '잡종'이 생존력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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