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개그맨 김형인의 사람 대하는 이야기_처세술

by 오인환

개그맨 '김형인'. '웃찾사'에서 '그런거야?'라는 유행어가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지냈다. 공개 코미디가 방송에서 언제 사라진지도 몰랐다. 공개 코미디 뿐만아니라 드라마나 예능도 보지 않았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탓일 것이다. 오래 전 알았던 이를 다시 만난듯 유튜브 채널에 비친 반가운 얼굴을 눌렀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리하여 시작된 인연 말이다.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봤다. 하나, 둘 보다 보니, 추천 영상은 계속 다음 영상을 띄웠다. 대게 '조폭', '징역' 이야기가 많았다. 특별히 관심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무심하게 봤다. 돌이켜보니 업로드 영상을 모두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징역'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긴 적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의 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교도소(矯導所)는 '감옥(監獄)과 다르다. 그저 가둬두고 징벌하는 곳이 아니라, 교화시키는 곳이다. 교도소(矯導所)의 교(矯)는 '바로잡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보면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인'에는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이 없다. 실수나 고의도 모두 살인이다. 그 죄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의 여지가 열렸다. 사악한 '악'들을 가둬 뒀을 것 같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며 인생에 대한 성찰은 이곳보다 많이 이뤄진다. 전과가 많은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 26%인 1,163만 명이 전과를 갖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성인 4명 중 하나는 전과를 갖고 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교화'가 되지 않는 무관용 사회라면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을지 모른다. 매스컴에 나오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나 파렴치한들이 만들어낸 '전과'에 대한 편견은 개그맨 김형인에 의해 아주 조금이라도 희석됐을 거라 믿는다. 나도 그랬다.

그의 짧고 투박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인생 실전에서는 아무리 깨우쳐도

또 무슨 일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뿐.

*

이렇게 공감되는 말이 있을까.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고 더 많은 이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고생은 안하는게 최고'이고 청춘이라도 아프지 않는게 최선이다. 다만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아픔과 고생의 순간이 찾아온다. 피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피하면 좋다. 다만 언제고 반드시 마주하게될 그것들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상대'가 별볼일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맛봐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젊을 때 말이다. 외국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을 때, 삶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주고 있다고 믿었다. 고작 'Hello'를 뱉으며 유아처럼 말을 더듬던 시기, 교수는 경제학을 뱉었다. 뭐라고 필기해야 할지도 막막한 그 첫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첫 시험에 무얼 써서 낼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흘렀다. 한 번, 두 번 하다보니,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 시험은 그냥저냥 할만했고 한 번을 경험하니, 두 번은 요령이 생겼다. 읍내 촌구석에서 자라던 내 어린시절은 '아버지'의 봉고차로 6개월에 한 번 시내에서 열리는 오일장 구경을 갔다. 버스도 타 본 적 없는 촌놈이 처음 버스를 타고 혼자 시내로 나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내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같은 장소를 몇 시간을 헤매다가, 공중 전화로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결국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 주변만 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고 나는 가방에 옷 몇가지와 화장품 정도를 넣고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따지고 보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시시해진다. 그것은 반복되면 '무의식'처럼 해결한다. 아픔과 고생은 당면한 당사자에게 가혹한 일이겠지만, 그까짓 놈들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말은 투박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리 깨우쳐도 무슨 일은 반드시 생긴다. 아무일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그의 영상을 정주행하여 봤던 나로써, 그가 쓴 글에 몇가지 생각해 볼만한 예시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사람에게 치이고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는 그에게서 '실패의 내성'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수 년 전, 만든 유튜브 채널은 지금도 구독자가 727명이다. 갈 길을 잃은 채널. 편집 기술이 없다거나, 컨텐츠가 없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업로드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오랜 기간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을 두고 새로운 채널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채널에 편집도 없이, 혼자 촬영한 영상, 아마 그 아마추어 같은 영상을 본 몇 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밖에도 꾸준하게 그에게는 무슨 일인가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얼마 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채널은 시작됐다. 그 동안 느낀바는 있다. 채널 내용과 상관없이 실패를 넘어서는 모습을 지켜본다. 흔히 감정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혹은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이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웃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웃기 힘든 일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에도 잠시 자신을 속이고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웃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나와 닮았다. 억지로 더 과하게 웃고나면, 웃는 동안의 슬픔은 아주 잠시 옅어진다. 그러다 혼자가 됐을 때, 병목상태에 정체돼 있는 슬픔은 뚫린 봇물처럼 쏟아진다. 와장창 쏟아지면 다시 그것을 잊기 위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나는 참 다행이도 그 탈출구를 '책'에서 찾았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어떤 걸 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찾아보게 됐다. 나쁜 쪽으로 빠지는 이들은 굳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사회면 뉴스에 나오곤 한다. 그를 잘 알진 못한다. 영상을 통해 정제된 그의 모습만 알 뿐이다. 다만 아무리 정제해도 걸러지지 않은 무언가가 영상을 통해 보여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는 더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그 탈출구를 삼지 않았을까. 남들이 기피할만한 주제와 사람들을 소재로 음지를 양지로 바꿔내는 그야말로 진짜 희극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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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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