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세계 3번째 부자인 워렌버핏은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와 홍콩 여행을 갔다. 여행 중 버핏은 게이츠에게 맥도날드 점심을 사주었다. 그날 해당 맥도날드 매장 이용자의 평균 자산은 백억불 이상이 넘었다. 평균의 오류는 그렇다. 당장 시골 동네 양로원에 빌게이츠가 방문하면, 양로원의 이용자 평균 자산은 수 조원이 된다. 숫자는 사실을 말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일화는 여럿있다.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영국의 열차 과밀 탑승자수는 1,000명이다. 다만 영국 열차는 평균 탑승자 수가 130명이었다. 고로 영국 열차는 과밀하지 않다. 이 결론은 잘못됐다. 물론 숫자에 따르면 영국 열차를 과밀하지 않다. 다만, 실제 탑승자 100%가 과밀함을 경험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통근 시간에 승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운행되는 열차가 10대라면 통근시간 한 대에, 모든 이용자가 이용하고 나머지 9대는 빈 차로 운행된다. 고로 열차 이용자의 100%는 과밀함을 느낀다. 객관적 사실을 들이 밀어도 그것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옳은 문제는 아니다. 통계 뿐만 아니다.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하며 전달하려는 욕구가 있다. 진실은 충격적이지 않다. 오늘 아침 내가 물 한잔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진실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오르 내려야 하는 '정보'가 되려면 정보는 '상품성'을 가져야다. 정보가 '마케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자극적인 '가짜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다. 흔히 1% 부자가 99%의 부를 차지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하위 50%보다 더 큰 부를 갖고 있다는 말 말이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2014년 1월 '가디언'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정확히 3년 뒤, 85명에서 8명으로 부자의 숫자가 바뀐다. 이야기는 점차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해당 글을 인용하여 부의 쏠림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나왔다. '인류애'의 상위 몇 명이 져야 한다는 '책임 촉구'도 생겼다. 다만 이것은 실제가 아니다. 하위 50%의 부와 동등한 숫자를 가진 이들은 상위 8명도 아니고, 85명도 아니었다. 실제 상위 2억 내지 3억명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포함될지 모른다. 숫자는 점차 자극적으로 수정된다. 나중에는 상위 1%가 인류 99%의 부를 소유했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이 주장이 팩트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가 8,500명이어야 한다. 주장의 오차가 100만 배가 되는 순간이다.
1982년 출간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 시대 가장 우량한 기업 43개로 경영의 모범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기업들은 2년 내로 30%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것들은 결과 편향적이다. 로또 1등 당첨자의 로또 당첨확률은 100%다. 숫자는 그렇다. 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과에 도달한 이들을 토대로 조건을 분석한다면 조건의 성공 확률은 100%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성공 조건'은 결과에 따라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조건'으로 변경해도 된다. 통계자료와 숫자는 이처럼 진실을 말하는 듯 하면서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둔다. 컴퓨터는 딱 인간의 편향만큼 왜곡한다. 인간은 믿지 못해도 컴퓨터는 믿는 요즘이다. 다만 컴퓨터 또한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야심차게 인공지능 챗봇인 테이(Tay)를 공개한다. 테이는 사용자로부터 학습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벌어진 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대량학살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무슬림 혐오주의자들로 인해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다. 구글스피커와 더불어 대한민국 인공지능들도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다. 기술자들은 강제적으로 개입하여 정보를 필터링 하도록 해야 했다. 유튜브 채널을 보면 '필터버블'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알고리즘이 사용자에 맞는 정보를 편향되게 제공하다보면 결국 정보의 버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에 따라 유튜브는 다른 채널을 보여준다. 10대의 유튜브 추천 채널에는 게임 방송이 주를 이루고 20대에는 연애나 코미디, 30대는 경제관련 채널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겠지만 이또한 사실이 아니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정보의 양은 무지 막지해졌다. 이제 정보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찾은 정보를 어떻게 취합하고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
팩트를 명확하게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은 중요하다.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 미래에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유튜브 채널이 짧게 요약해 주는 정보로 세상의 흐름과 지식을 쉽고 빠르게 쌓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영상메체는 정보 전달을 일방향으로 한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보낸다. 정보가 '선전물'이 되는 것은 적잖은 독재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얼마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렸다. 희한하게 이 기간동안 경제 통계발표가 연이어 무기한 연기됐다. 정보를 갖고 있는 이들은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기도 하고, 비공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한다. 공급자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을 때, 우리의 눈과 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심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고통을 겪을 때,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 자리가 되는 도무지 이해가 하기 어려운 통계자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이는 공급자의 신뢰문제다. 신뢰할 만한 공급자일 경우, 그 정보를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공급자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조작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 따지고 보자면 그 힘은 '독서력'에서 얻어진다. 쉽고 빠르고, 짧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이 정보는 물론 꽤 좋은 방향으로 소비된다. 다만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능동적인 정보습득 능력을 길렀을 것이다.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공급자가 되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수요자가 된다. 수요자가 수동적일수록 공급자는 능동적이게 된다. 수요 공급 이론에 따라 언제나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적다. 고로 정보는 언제나 값어치를 갖는다. 이것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은 '힘' 혹은 '권력', '재력'을 갖는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릴지, 그것을 능동적으로 해석할지. 그것은 본인이 판단할 몫이며 그 모든 것은 독서가 재료가 될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