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흔 아홉 살이다_중문해수욕장

by 오인환

아흔 아홉 살이다. 관절마디가 아파서 걷지를 못한다. 눈은 침침하고 기억도 가물거린다. 운동을 해야 건강해진다는데, 아파서 운동은 할 수가 없다. 먹은 것은 소화가 되지 않는다. 소화 가능한 정도만 삼킨다. 대소변은 가끔 실수한다. 70대 간병인은 큰 한숨을 쉬지만 아무말 없이 뒷처리 한다. 언젠가 치열한 경쟁 상대는 사라졌다. 또래는 모두 죽고 없다. 30년 젊은 어린 녀석들도 모두 죽어간다. 그들과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도 없다. 비싼 수트도 필요없고, 멋있는 자동차나 비싼 시계도 필요없다. 단지 소원이 있다면 조금더 젊은 시절을 누려 보는 것이다. 이빨은 없다. 잇몸으로 겨우 씹는다. 조금 이른 시간인 아침 5시에 눈이 떠진다. 눈을 껌뻑이고 있으면 곧 5시 5분이 된다. 방 천장의 벽지 모양을 실핀다. 한참을 살펴도 5시 10분이다. 날아다니는 파리 녀석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 본다. 나보다 늦게 태어난 저 녀석은 아마, 나보다 일찍 줄을 것이다. 가여운 녀석의 행동을 관찰한다. 시간이 한참을 흐른 것 같다. 시계를 살핀다. 5시 15분이다. 건조한 목에서는 갈리진 소리가 나온다. 근육이 약해져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은 힘들다. 물 한잔 따라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8시는 돼야, 최소 간병인을 부를 수 있다. 다시 눈을 깜빡이고, 다시 천장의 벽지 모양을 살피고, 다시 파리 녀석을 따라가 본다. 겨우 반복하면 6시다. 침이 잘 삼켜지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반복을 두어 번 반복하니, 눈이 꺼칠거린다. 침침한 것이 건조하고 따갑다. 세게 눈을 감았다 떴더니 별이 보이고, 세상이 환해진다. 세상이 환해지면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후회 없는 젊음을 살았느냐?"

아니라고 대답한다. 쏜살처럼 지나가던 젊은 시기의 시간은 병상에 누운 뒤 부터 거북이 처럼 흐른다. 이제 곧 죽을 날을 기다리건만, 이제는 1분도 잘 흐르지 않는다. 젊음을 묻는 목소리는 한번 더 묻는다.

"젊음을 다시 준다면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보겠느냐?"

그렇다고 답한다. 목소리는 60년을 돌려 주겠노라 답한다. 기억은 지워낼 것이라고 답한다. 눈을 뜬다. 모기장 속,아이와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쌔근쌔근 거린다. 꽤 생생한 꿈을 꾸웠다. 밖으로 나와 정수기로 물 한 컵을 받는다. 찬물을 들이키고 세면대로 간다. 아직은 탱탱한 피부다. 현실 같은 꿈을 꾸었는지, 꿈 같은 현실을 살았는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꿈에서 본 70대 노파의 얼굴이 자고 있다. 그녀는 6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장실 볼 일 볼 때마다, 불르던 귀찮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놀아달라는 아이의 외침에 '이따가'를 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열 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시기 친구들과 중문 해수욕장을 간 적 있다. 태풍이 올라오던 시기다. 파도는 뭍으로 물을 뿜었다가 무섭게 다시 빨아들였다. 발목만 담그고 있던 젊은 친구들은 균형을 놓치고 넘어졌다. 촌티 나는 옷을 입은 녀석들이 모래 찜질을 하고 폴더폰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녀석들과 간단한 요기 거리를 구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방금 전 있던 해수욕장에서 젊은 남자가 익사했다고 들었다. 잘은 모른다. 그 또한 내 또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도 좋은 추억으로 그곳을 다시 들렸을 것이다. 서른이 넘고 다시 찾은 곳에는 아이와 함께 했다. 아이는 발목을 적시고 싶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십 수년 전, 안타까운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조금만 물에 적시고 모래를 가지고 놀게 했다.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렸다. ASMR로 찾아 듣던 바닷소리다. 가장 진짜 같은 소리를 찾아 듣고 위로를 받았다. 정말 자연과 같은 소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렇게 문 밖으로 나가면 3차원 공간, 소리, 바다향까지 완벽하게 바다를 맛 볼 수 있는데, 문을 닫고 '바다 소리'를 찾던 지난 시가가 바보 같다. 스무 살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다. 언젠가 반드시 방바닥에 누워 어떤 날을 후회할 것이라 확신했다.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불쌍한 사람, 미워하는 사람. 모든 사람이 다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 부질없는 감정 때문에 사라질 것들에 쓸데 없는 인생 낭비를 할 필요없다. 모든 일은 진지해 질 필요가 없다. 그저 출입시간과 퇴실시간을 정해두고 노는 '키즈카페' 같은 일이다. 무서운 공포도 돈을 주고 사서 본다. 인생은 별거 아니다. 그저 태어나버림과 죽어버림 사이에 공백을 채우는 일이다. 재밌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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