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아프리카는 어떻게 역사가 되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by 오인환

아프리카는 예전부터 광활한 사막과 위험한 질병, 곤충들의 대륙이지만 언제나 유럽보다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14세기, 아시아에서 시작한 '흑사병'이 유럽으로 번졌다. 그때 아프리카는 비교적 유럽보다 안전한 대륙이었다. 페스트는 유럽의 인구 3분의 1을 죽었다. 비위생적인 양식과 들쥐는 유럽을 죽음의 대륙으로 만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륙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더 나은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5세기 중엽,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착했을 때, 어떤 점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이 되려 평온해 보였을지 모른다. 페스트의 발병으로 유럽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는 비교적 그 위험에서 안전했다. 아프리카에는 그 전에도 노예가 있었으나, 그들은 각 가족의 일부였고 다시 해방될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 아프리카 문명은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문화적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오기 전에 중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먼저 방문했다. 그들은 아프리카 동해안에 상륙해서 물건을 교환하고 돌아갔다. 중국이 대양을 넘어와 아프리카 대륙인들을 거래 파트너로 여겼을 만큼, 아프리카는 꽤 문화를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입을 시도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유럽쪽이었다. 뒤늦게 유럽에서 온 상인과 선교사들은 군인과 함께 내륙으로 진입했다. 흑사병으로 유럽의 노동 인구가 급격하게 줄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 있는 '노예'를 매매해 갔다. 노예들은 아랍 혹은 아프리카의 상인들에 의해 거래 됐다. 또한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에 협조하므로써 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경쟁은 유럽 내에서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독일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84년에 유럽 열강 지도자들을 베를린으로 소집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경쟁이 카오스적으로 치열해지자ㅡ 대륙 분할에 대한 협상을 제안했다. 당연히 여기에는 유럽 지도자만 초대 됐으며, 아프리카의 대표자는 제외됐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되는 과정을 보며 사람들은 '인류'가 '문화적인 방식'으로 진화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다. 식민지가 해방된 것은 '인류애'와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인도적인 어떤 이유나 문명의 발전에 대한 흐름이 없다. 오로지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형성과 수지타산만 존재할 뿐이다. 간혹 유럽인들이 인도적인 이유로 식민지를 해방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해방한 것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인도적인 미안함이나 '문명인의 시선'이 아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있는 식민통치를 포기한 것은 오로지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무렵, 유럽 열강들은 고민이 생겼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의 노동력 일부를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했고 기계는 인간보다 더 큰 생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럽 인구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며 유럽에 저항하는 아프리카인들로 식민정부를 유지하는데 드는 경비가 늘어났다. 이제 유럽의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의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포드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석유의 시대를 맞는다. 자동차와 석유의 시대의 핵심은 '컨베이어 벨트 노동'이다. 이로써 생산력은 극도로 높아진다. 미국에서는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며 창고에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노동자를 통한 '공급력 확대'는 불필요하게 됐다. 언제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공급이,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폭발하면서 급기야 수요는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다. 생산된 물품이 쌓이자, 물품의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품의 가격이 떨어지자 대략 해고가 일어나 실업률이 급증했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먼저 일어났는데, 이를 '세계대공황'이라고 부른다. 유럽과 미국은 경제에서 '수요'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많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서구 열강들은 자국내에서 만들어낸 생산물을 자유무역으로 거래하는 쪽의 이익이 크다고 계산했다. 그들은 종족적 연관성이나 문화, 언어를 염두하지 않고 국경선을 놓고 빠져 나갔다. 그 바람에 아프리카 대륙은 한 세기 가깝게 내전과 빈곤 등의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로써 한 사람과 한 사람은 인간적일 수 있으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인간성'과 얼마나 별개의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노예 제도는 이처럼 야만적이지 않았다. 노예제도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부터 존재했다. 이들은 빠르게 가족 안으로 통합되었고 시민권도 가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산권을 가졌고 개중에는 해방되는 방식이 많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도 했다. 다만 유럽인들이 남북 아메리카에 플랜테이션 농업을 도입하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이들은 새롭게 얻은 신대륙에 거대한 농장을 가졌다. 목화나 담배,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기계가 할 수 없는 노동력의 필요를 느꼈다. 이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낮은 지위와 권리의 노예들을 반입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아이러니하게 가장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국가는 '미국'이 된다. 따뜻한 남부의 농업은 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나 북부 지역은 아니었다. 북부지역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같이 수요보다 공급력이 높았다. 고로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구매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미국의 북부는 노예를 해방하여 높은 구매력을 갖길 원했고, 미국의 남부는 노예를 통해 높은 공급력을 갖길 원했다. 이렇게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이해관계의 갈등이 발생하고 이어서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따지고 보자면 링컨이 '노예를 해방했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그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도적인 정치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많은 사업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 제도의 종말은 아프리카에서 능동적인 쟁취를 한 것은 아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경제적 혹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현대 우리에게 꽤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간은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어 비교적 현대인들이 '문명인'이라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비인간성에 근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 '경제' 시스템의 논리가 언제든 '비인간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이익을 만들어 내도록 움직인다. 누군가는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 없는 '시스템'의 특성을 따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에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인간의 역사에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비극과 야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도 전혀 다르지 않다. 법치주의는 다수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따른다. 법에는 예외가 없다. 가령 100m도 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술을 먹고 자동차를 탔다고 해보자. 이것을 발견한 경찰은 상대가 적당히 아는 지인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한다. 그것은 법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따르는 일이다. 이것은 작은 사회에서는 분명 융통성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규모가 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예외도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비인간적인 역사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정교해진다. 고로 다시 비인간적인 역사는 지금도 언제든 다시 반복할 수 있다. 역사를 살피면 백인들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이는 또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이기도 하다. '백인'이 사악하다는 의미로 역사를 접근하면 이 양날의 칼은 반드시 다시 돌아와 다른 인종에게도 적용된다. 고로 그 죄는 시스템에 있고 인간에게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스템을 개조하는 것은 가능하다. 언제나 가능성이 열리기 위해선, 가능한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20230114%EF%BC%BF215445.jpg?type=w580
20230114%EF%BC%BF215458.jpg?type=w580
20230114%EF%BC%BF215502.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각] 지금의 돈보다 통찰력이 중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