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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있다가, 맘에드는 문장이 나오면 가차없이 사진을 찍고 넘긴다. 조용히 읽고 있던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책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강의도 듣지 않으며, 내면에 존재하는 잠재성을 끌어올리는 데도 무관심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당신을 보라."
사실 책을 읽을 때, 분명한 자기계발 목적을 가지고 읽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흥미로운 주제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희열 때문에 읽는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인문학 강의나 다큐멘터리를 보곤 한다. 칠판이 배경인 영상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냥 흥미로운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명상 어플리케이션을 정기 구독하기도 한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멋지게 포장하고 싶지만,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런 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매일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나스닥', '다우' 지수와 암호화폐 가격, 환율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관심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가령 경제나 역사, 물리학, 심리학 등 마구자비로 아무거나 골라 읽다가 꽂히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비슷한 류의 책을 골라 읽는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달라 보이는 순간이 생긴다. '왜 그런지 궁금해 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가령 이렇다. 해외 여행을 갈 때, 환율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는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환율이라는 것은 왜 발생하고 그 역사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쉽게 몇 푼을 주고 커피는 시켜 먹으나, 커피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식 식당에 있는 젓가락 끝은 왜 뾰족한지, 중식 식당에 있는 젓가락은 왜 투박한지, 한식은 왜 쇠젓가락을 사용하고 있는지... 이런 호기심들이 점차 늘어나다보면 현상을 바라보는데 기본적인 호기심이 생긴다. 어째서 일본의 엔화는 떨어지는지, 터키의 환율은 왜 갑지가 10분의 1토막이 났는지, 어째서 미국은 달러를 대량으로 풀었는지, 어째서 미국은 금리를 올리고 있는지...
이런 호기심들은 점차 발전하며, 경제, 심리, 기술, 문화, 사회, 역사, 물리 등으로 넓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진다. 세상이 교묘하게 유기체처럼 섥히면 희한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을 맞춰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한국의 '강원랜드'와 미국의 '존 디어', 두 회사의 주식을 매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종에 맞춰보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워렌버핏이 자신의 일과의 상당수를 독서에 투자한다는게 이해가 간다. '돈을 벌기 위해' 라기 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현실에서 사용하며 느끼는 희열과 같다.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00년경에 최초로 지구의 둘레를 측정했다.
1. 지구가 완전한 '구' 모양일 것
2. 태양 빛이 평행으로 들어 올 것
3. 평행한 두 직선과 다른 직선이 만나 생기는 동위각이 항상 같을 것
세가지 전제를 이용했다. 그는 이집트 시에네 마을 우물 위에 해가 수직으로 비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같은 경선의 알렉산드리아는 해시계 그림자가 약 7도 12분 각도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아냈다. 고로 360도에서 7도 12분을 비례식에 대입하여 3만 9000km라는 둘레를 알았다. 이것은 지금 확인된 지구의 둘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만히 앉아서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우주의 실체도 비슷하다. 인간은 기껏해 봐야 달의 공전 궤도까지 밖에 나가 본 적 없지만, 책상에 앉아서 '태양'까지의 거리, 목성의 크기, 태양의 질량과 구성 물질을 파악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나이를 가늠하기도 한다. 심지어 빛의 속도로 150만 광년을 가야 도달한다는 안드로메다 은하와의 거리를 재고, 더 크게는 우주의 넓이와 나이도 확인한다. 실제로 줄자로 잰 것이 아니라, 모두 책상 머리맡에서 나온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지만, 인류는 모두 그 무의미한 일들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의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책상에 앉아서 생각이나 하는 철학자 '탈레스'를 사람들은 비난했다. 그는 천문학과 수학을 좋아했는데, 이를 이용하여 기원전 585년에 일어난 일식을 예언하기도 하고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줄자 없이 측정하기도 했다. 다만, 이처럼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탈레스를 사람들이 비웃자, 그는 자신이 가진 수학과 천문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난'이 무능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올리브 농사 주기를 파악하고 천문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올리브유 압착기사용권을 독점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 그것을 우리는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통찰력은 단순히 '노동'을 통해 시간을 '급여'로 바꿔 수익을 얻어내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지난 현인들이 쌓아놓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등에 엎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조금 빨리 바라보며 발생한다. '돈'이 가장 최우선이라면 몸이 대략 성숙한 중학교 2~3학년부터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맞다. 다만 국가는 그 이후 한참을 더 교육을 시킨다. 고부가가치를 생성해 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에는 시간이 충분히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환상' 거침없이 푼돈을 투자하더라도, 그 시간에 자신에게 더 큰 투자를 하는 사람이 더 큰 소득을 얻는다. 100만원을 원금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1000%의 성장을 해도 1000만원 밖에 얻지 못한다. 다만, 100억을 원금으로 갖고 있는 이들은 1%만 성장해도 1억을 얻는다. 즉, 가장 큰 투자는 '지금 당장 어디라도'가 아니라, 충분히 여물고 익을 때까지 때를 기다리며,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현금화 하지 않은 '원금'이 무르 익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그것은 '늦은 것'이 아니다. '과일'을 빨리 수학하고 싶다고 파란색에 따버리면, 그것은 모두 비품이 된다. 진짜는 조금 더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무르 익힌 뒤에 수확한다. 아마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는 자신의 계발에 충분히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익지 않은 과일을 익히기 위해 충분한 자기계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통찰력은 단순히 '돈 버는 법'에 대한 지혜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일회성은 반드시 언제가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