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를 숫자 1이라고 해보자. B를 숫자 2라고 해보자. C는 숫자 3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알파벳과 숫자를 대응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해 보면, 개(DOG)는 4, 15, 7이고 고양이(CAT)은 3, 1, 20이다. 문자가 숫자로 변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의 3원색이 있다. 흔히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이라고 하는 RGB다. 컴퓨터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이 삼원색이 만들어내는 수백만개의 픽셀로 되어 있다. 아주 작은 픽셀 점이 여럿 모이며 배합하여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 낸다. 극단적으로 진한 빨간색은 R=255, G=0, B=0일 것이다. 무채색이라면 R=0, G=0, B=0이다. 이 말은 무엇일까. 앞서 문자를 숫자화 했던 것 처럼, 색깔을 숫자로 변환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살펴보자.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보면, 사진을 좌표라고 표시했을 때, 어떤 좌표지점에 극단적으로 '검정색'이 몰려 있는 구간이 있을 것이다. 검은색 픽셀이 몇 십 개 뭉쳐 있는 그 구간을 '눈'이라고 설정한다면 인공지능은 고양이와 개 사진에서 눈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렇게 검은 픽셀이 모여있는 두 개의 좌표의 거리를 측정하면 고양이와 개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의 대표 주자인 SVM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다. SVM이란 Support Vector Machine의 약자로 두 개의 집단을 나누는 적절한 구간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이다. 눈동자를 좌표 평면의 X축에 두고 코의 길이를 좌표평면 Y축에 두면 각자의 데이터는 좌표평면 내의 한 구간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에 개와 고양이의 데이터를 집어 넣는다. 그런 경우에 각 집단을 경계로 하는 평균 직선이 생겨난다. 이 직선은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될 때마다 그 기울기 값이 변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학습'이라고 한다. 이 정도 원리로 개와 고양이를 구별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공지능'에 대해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의 대중은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인공지능'에 대해 어느정도의 불안감은 해소된다.
막연하게 공포심을 갖는 것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잘 모르는 것에 공포심을 갖는다. 인간이 모르는 분야는 처음에는 자연과 현상이었다. 이것들이 인간의 이해 범주로 들어오면 인간은 그것에 대한 공포감을 상대적으로 덜 갖는다. 날씨나 천체, 질병 등이 그렇다. 그저 '신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이해를 거부하던 시기가 지나가면, 인간은 그것을 되려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편안함을 갖는다. 미지(未知)나 무지(無知)는 그렇게 인간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 온 것들은 이제 '안정'의 대상이 됐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인간을 편안하게 만들었던 '영역'이 되려 미지의 영역이 됐다. 다수의 인간은 날씨나 천체, 질병을 슬기롭게 바라보고 때로는 이용하기도 하지만 되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됐다. 이제는 인간의 영역 중에서도 미지(未知)나 무지(無知)의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전기선을 꼽으면 작동하는 전자장치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고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물을 인지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다. 그것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때로는 인간 위에 군림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갖는다. 날씨가 그랬고, 질병이 그랬고, 천체가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것에 막연한 공포심을 갖는 이들 이면에는 그것에 대한 이해를 먼저하고 '안정감'을 통해 그것을 '활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남들이 공포스러워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용기는 알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나온다.
'나보다 똑똑한 누군가가 어떻게든 했겠지.'
막연한 생각은 이해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떤 원리로 인공지능 스피커는 정보를 찾고 말하는지, 어떤 원리로 기계는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지, 어떤 원리로 기계는 사람을 구별하고 인식하는지.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사용은 하되, 대략적인 원리를 모르며 막연히 그것을 두려워 한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쓴 '정인성 작가'의 책이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는 정말 손 꼽히는 명작 중 하나다. 누군가는 '외계인의 기술'이라고 이해의 시도를 포기하는 '반도체'라는 분야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는 이를 '이해'의 범위로 넘겨 주었다. 그의 다음 저서인 'AI 혁명의 미래'는 역시 걸작이다. 묵직했던 '반도체 제국의 미래'에 비해 가볍고 얇다. 그 탓에 조금 더 분량이 많아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복잡한 AI에 대해 일반인이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책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원리를 모르고 사용하는 것들이 많다. '전기'나 '스마트폰', '반도체'들이 그렇다.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은 우리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 말은 '기술'의 수요자는 거대하고 '공급자'는 한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고도화 될수록, 앞으로 수요자는 더 거대해지고 공급자는 더 한정적이게 변한다. 즉, 아예 이해를 시도하는 것 조차 두려운 이들이 많아 질수록 수요 공급 곡선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알면 알수록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수학'에 관한 생각이다. 흔히 교육에서 '영어'는 쓸 일이라도 있는데, '수학'은 졸업하면 쓸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만 느낀 것이라면 '수학'의 중요성이다. 우주는 수학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수'는 엎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과목이라는 생각이든다. 수학으로 이뤄진 인공지능이 어쩐지 우주와 닮았다. 고로 최초에 인간이 자연과 현상을 두려워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현재 해외에서는 'ChatGPT(챗지피티)'라는 오픈에이아이가 이슈다. 2022년 12월 1일에 공개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꽤 수준 높은 질문과 답변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알파고'가 우리에게 주었던 공포와 비슷한 무게의 공포를 갖는다. 원리는 모르겠으나 무섭게 발전해가는 기술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해를 포기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단순한 빅데이터의 평균치라는 허접한 수준의 정보만 갖고 있던 나에게 'AI 혁명의 미래'는 새로운 이해의 폭을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정인성 작가'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로봇 전문업체 '(주)맨드언맨드의 최홍섭 대표가 공동 저자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 설명하는 '쉽게 설명하는 AI의 이야기다.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가 강력추천 할 만큼 책은 훌륭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