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Feb 14. 2023

[계발] A+도 C-도 공감하는 글쓰는 노하

 2019년 7월 30일부터 햇수로 5년간 매일 포스팅을 했다. 어떤 날은 2개,  어떤 날은 3개, 못해도 하나는 무조건 했다. 글자는 2,000자에서 3,000자 정도. 2020년 10월 2일 잠들어 포스팅을 하지 못한 하루를 제외하면 하루도 빠진 적 없다. 스스로 독하다는 생각을 했던 건, 5권의 책 집필 도중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거다. 원고를 완성하고 잠들기 전에 다시 3,000자를 쓰고 잠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기간에는 밤 11시 59분 59초에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다. 주간 스케줄 일정이 꽉차면 '예약 발행'을 했다. 스스로 대단한 작가가 되기 위해 들인 습관은 아니다. 그냥 쓰다보니 쓰게 됐다.


 중학생이던 시절, 국어 선생님은 '창작시' 숙제를 주셨다. 집필했던 창작시를 선생님께 드렸다. 그때 학교에는 OHP라는 기계가 있었다. 칠판 옆에서 빛을 뿜는 기계였다. Overhead Projector라고 투명 필름 위에 네임펜으로 글을 적으면 위로 향하는 빛이 거울에 굴절되어 칠판에 투사되는 형식이다.

 국어 선생님은 이 기계에 'A+' 과제물들을 올려 놓으셨다. 친구들의 창작시가 하나 둘 소개됐다. 이어 마지막에 내 시가 소개됐다.

 

제목은 '시계바늘'.

시계바늘을 인연에 빗댔다. 앞서나가고 뒷쳐지고 있지만, 때가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초, 분, 시침'의 관계를 인연에 빗댔다. 선생님은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시구나' 하셨다. 이어 "이 시에 왜 A+를 주었냐면..."하고 말을 하셨다. 다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 친구들이 말했다.

"선생님, 저기 C-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랬다. 선생님이 투사하신 내 창작시에는 'C-'가 적혀 있었다. 아마 'A+' 사이에 실수로 내 시가 들어갔던 모양이다.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은 무안함과 미안함을 숨기려고 하셨다.

"얘들아, 이거 A+ 줄까?" 아이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닥 자랑할 만한 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잊혀져도 좋았다. 선생님의 실수와 아이들의 반응으로 이 시는 2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시가 됐다.


  짧은 순간이 뇌리에 밖혔다. 그해, 내 창작시는 C-를 받고 마무리됐다. 그 시가 'A+'였건 'C-'였건, 성적과 점수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 것이다. 연 소득 10원의 차이도 만들지 못하는 작은 수행평가다. 다만 그 순간이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글'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가 있다. 유명한 이들이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길 때도 있다. 그 때마다 잊혀졌던 중학교 시절이 번뜩 지나간다. 특별히 충격적이거나 트라우마도 아니다. 그냥 불현듯 그 장면이 떠오른다.


 어쩐지 A+들 사이에 실수로 올려진 C- 같은 느낌.

점수가 투사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A+의 감동을 했을까. 운좋게 A의 사이에 속한 가짜의 부끄러움이 불쑥 들때가 있다.


 읽고 쓰다보니, '진짜'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오랜기간 글쓰는 일을 동경하고 재능이 있던 이들을 우연히 만난다. 부끄럽게 그들의 글과 한데 섞일 때가 있다. 지금도 서점에는 잘난 사람들의 저서 중 내 글이 섞여 있다. 아주 짧은 순간, 중학교 시절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언젠가는 '글쓰기' 강연을 부탁 받는 경우도 있다. C-의 강연이지만 나름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크게 대단한 것 없이, '그냥 쓴다. 쓰고 읽고 고친다.' 이것이 전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오른발을 아래로 밀면서 왼발에 힘을 풀라고 하는 조언처럼, 이론적 조언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냥 습관이다. 그냥 매일 쓰면 되고, 형편없고 형편있고를 판단하지 않고 쓰면된다. 대단한 영감도 필요없고 엄청난 자기관리도 필요없다. 꽤 체계적인 시간관리나 글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필요없다. 그냥 쓰면 된다.


 끓는 물에 면사리를 놓고 스프를 털어 넣고, 봉지는 쓰레기통에 던져 놓듯. 거기에는 철학도 이유도 없다. 그냥 '라면 먹어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제 해야 하는가. 왜 해야하는가도 필요없다. 라면 먹을 때, 냄비가 없을 것 같다면 하면 그만이다.


 C-의 조언이 가끔 꽤 괜찮은 A+의 조언과 일치할 때가 있다. 그때는 잊혀진 국어 선생님께 얄미운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을 갖는다. '도나 바커'의 '어떻게든 완성시켜드립니다'는 투박하지만 현실적인 글쓰기를 말한다. 이 A+작가의 생각이 C-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데서 다시 한 번 통쾌함을 갖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