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 떠나기

새로운 곳을 향한 여정

by 이세

나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모두 다녔다.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한 까닭이다.


5학년이 되어서는 집과 가깝던 사립학교를 떠나 전학을 갔다. 공립학교는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마침 엄마가 그 학교로 발령을 받은 덕뿐이었다. 2살 어린 여동생과 곧 입학할 7살 남동생까지 모두가 함께 다니자고 했다. 함께 하는 게 기대되진 않았다. 그저 지겨웠던 사립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작년에도 엄마는 나와 혜진이 둘의 학비를 만드느라 고심했었다. 그런데 남동생까지 또 입학이라니 사립학교는 더는 무리였다.


전학이 크게 아쉽진 않았다. 내가 전학 간다고 슬퍼할 친구도 없었으니까.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악기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조용히 가방을 싸서 나왔다. 복도 끝 창문에서 홀깃 교실을 보면 바이올린과 플루트, 첼로까지 번쩍거리는 악기들이 보였다. 수업시작 전 귀를 찌르는 “라” 음의 조율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혼자 털털 걸어 돌아왔다.


"혜민아, 너는 첫째 잖니. 엄마 너 바이올린 가르칠 돈이 없어”


엄마의 변명은 늘 똑같았다. 곰국 우려먹듯 그 후로도 몇 번을.


신기하게도 엄마는 남동생 희윤이에게는 변명하지 않았다. 희윤이가 6살이던 어느 날 엄마는 희윤이를 동네 피아노학원에 데려갔다.


“어머니! 이 아이는 모차르트 같은 재능이 보여요.”


원장선생님은 호들갑을 떨며 난생처음 피아노 건반을 눌러본 희윤이가 음감이 있다고 했다. 그날 엄마는 음표는커녕 “도레미파솔” 글자도 모르는 희윤이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개를 동시에 배우게 했다. 비록 우리 집 모차르트는 몇 달 안가 지겨워하며 학원을 때려치우긴 했지만. 나는 첫째라서, 모차르트 같은 신동은 더군다나 아니어서 바이올린은 잡아 보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말하진 않았다. 물론 묻는 사람도 없었다. 매일 출근하는 우리 엄마만 빼고, 다른 친구들 엄마들은 아마도 서로 친한 듯했다. 소풍날에도 수련회에도 나 혼자 엄마 없이 갔다. 나는 초대받지 못한 채 주말이면 다른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매주 열렸다.


혼자 되묻곤 했다. 학비도 버거워하면서 왜 나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걸까? 여름 수영캠프, 겨울 스키캠프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갈 수 있는 걸까?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책만 읽었다. 책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래서 전학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이 시원했다.


속이 시원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