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 부딪히기

새로운 학교, 전혀 다른 공기

by 이세

전학 첫날,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골랐다. 까만 공단에 큐빅이 꽃모양으로 박힌 원피스였다. 나의 첫 공립학교 전학생 데뷔였다. 담임선생님에게 이끌려 교탁 옆에 서니 수십 개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날 쳐다봤다. 목소리가 너무 떨려 염소라고 놀림받을 것 같았다. 콩콩 뛰는 가슴으로 간신히 첫인사를 마쳤다. 그날 이후 그 까만 원피스는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


“야, 나는 무슨 공주병 환자가 전학 온 줄 알았어”


나중 에서야 들은 친구의 말이었다. 그 고백이 아니었어도 그날 나를 덮친 교실의 시선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5학년 교실에 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나뿐이었으니까. 불과 몇 킬로 떨어진 곳에선 다들 이런 옷이었는데. 교실의 분위기가 대번에 달라졌다.


새로운 학교는 달리는 기차처럼 활기찼다. 한 학년에 무려 13반이나 있었고 한 반에도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우글우글했다. 빽빽하게 놓인 책상과 의자까지 교실은 터질 듯했다. 꽉 차 있는 아이들 때문인지 엄마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교문 앞, 교실 앞, 복도 끝에 수시로 서있던 엄마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가 잘 빗겨준 머리칼을 하고 도브 비누 냄새를 풍기던 폴로 칼라의 짝꿍도 더 이상 없었다. 새 짝꿍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고 피부는 새까만 비쩍 마른 개구쟁이였다. 때때로 눈에 왕방울만 한 눈곱을 붙이고 지각하기 일쑤였고, 종종 파를 썰어 넣은 곰국을 먹은 입 냄새를 풍겼다. 새 짝꿍의 엄마는 남대문 근처 어느 식당에서 주방일을 돕느라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돌아오신다고 했다. 같은 반 아이들의 말투는 거칠고 옷매무새는 비틀어졌어도 목소리만큼은 왕왕 울렸다. 더 이상 우리 집이 전교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나는 그제야 편안했다. 전학 간 학교는 여름 수영캠프도 없었고 겨울 스키캠프도 없었지만 어차피 갈 수 없었던 나는 아쉽지 않았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겨울이면 엄마는 매번 비싼 스케이트 구하느라 동동거렸다.

‘내 발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까?’

스케이트 수업 시즌만 되면 자꾸만 금세 커지는 발이 원망스러웠다. 얼음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재미를 느낄 새도 없었다. 발이 커질수록 또 스케이트를 바꿔야 하는 것이 마음을 짓눌렀다. 다행히 전학 후엔 그런 걱정들이 사라졌고, 나는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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