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심기
새 학교에 적응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친구들은 전학생이었던 나에게 금세 손을 내밀어줬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몰려가 교문 앞 리어카에서 300원어치 떡볶이를 사 먹으며 웃었다. 전교에서 제일 가난한 집에서 내 방도 내 책상도 침대도 없이 살던 아이가 처음으로 친구네 집 지하 셋방, 옥탑 밑에 다락방, 언덕 위에 달방, 빌라 3층 전셋집을 누비며 다녔다.
하루는 조별 과제를 하려고 친구네 집 한 곳에 모였다. 한옥이었던 집을 개조해 다닥다닥 붙은 방을 여러 개로 쪼개 세를 주는 집이었다. 친구가 어지러운 처마 복도 끝을 지나 방문을 열었고 이불이 어질러진 온돌방에는 엄마인지 이모인지 모를 여자가 부스스 일어나 귤을 내주었다. 어디가 그 친구 집 부엌이고 마루인지도 모르게 여러 집과 여러 사람, 세간들이 엉겨있었다. 어지러운 나와 다르게 친구는 걷히지 않은 이불과 얼룩에도 전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없었다.
나와 못지않게 함께 전학 간 2살 터울 여동생 혜진이도 거침없이 잘 적응했다. 물려 입은 커다란 사립학교 교복 밑에서 늘 숨죽이며 울기만 하던 아이가 순식간에 반장이 되었다. 삐들했던 모종이 옮겨심기에 성공했다. 어느 날인가는 학급비품을 옮기는데 혜진이가 진두지휘를 해서 아이들을 일렬로 늘어 세우고 척척 물건을 전달시켰다고 했다. 타고난 반장 감이라며 다들 칭찬이 자자했다.
"혜진이가 첫째로 태어났어야 했어"
"혜민이는 너무 예민하고 배려심이 없어. 혜진이처럼 동생에게 양보를 잘하는 아이가 첫째였어야 했는데"
구석에 쪼그려 있던 동생이 활짝 피어나는 게 기쁘기도 전에 나를 향한 엄마 아빠의 줄 세우기는 비난이 되어 나를 아프게 찔러댔다.
어찌 되었든 나 역시 옮겨심기에 성공했다. 나는 언덕배기의 친구들 집을 오가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반장대신 나는 조장을 했다. 교내에서 글짓기 대회며 미술대회는 다 내 차지였다. 반대표, 학년대표, 학교대표로 교내 외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내가 다니던 사립학교와 새로 전학 간 공립학교는 자로 잴 듯 가까웠다. 같은 동 내에 있어서 그 이후로도 길을 오며 가며 예전 학교 친구들을 자주 마주쳤다. 단지 전학을 간 것뿐이었는데, 학교가 바뀌니 서로를 모른 척했다. 2년 뒤 결국 같은 중학교에서 모두 만났지만 4년이나 다녔던 그 학교는 내 학교가 아니었다. 졸업장에 쓰인 초등학교가 나의 소속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치 나의 4년은 그 아이들 머릿속에서 지워진 듯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듯 모르는 척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다른 세계인 듯했다. 어떤 친구는 커다란 대문을 지나, 말끔히 정돈된 초록 잔디밭이 깔린 집에서 살았다. 또 어떤 친구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또 어떤 친구는 무너지지 않는 게 다행인 성냥갑 같은 집에서 다닥다닥 붙어살았다. 나는 그 사이 그 중간 어딘가 쯤에서 어디에도 오롯이 속하지 못한 채 발걸음만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