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단짝친구
나는 5학년 2반이었다. 전학 첫날의 어색한 공기도 금방 스쳐가고 나는 곧 단짝 친구가 생겼다. 미연이는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길렀다. 피부는 일년 내내 한여름인 듯 까무잡잡했다. 미연이는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우리집에서 가까운, 미연이네 집이 2층에 있는 빌라 건물의 공터에 가서 미연이를 불렀다. 같이 화단의 진흙을 뭉치고 나뭇잎도 따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면 서둘러 실내화를 벅벅 문질렀다. 빨리 실내화를 빨아야 나가 놀 수 있었다. 5월의 오후는 따스하다 못해 열기가 뜨거웠다. 뛰느라 벌개진 얼굴로 서로 손을 잡고 걸으면 그렇게 가슴이 벅찰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리 더워도, 꼭 붙어 손잡고 걷는 게 좋아"
"나도 손에 땀이 나도 이렇게 깍지 끼고 잡는 게 좋아"
우리는 손 깍지를 끼고 걷는 것 하나로도 서로 공통점이 많다며 마주보고 웃었다. 마치 연인들 같았다. 볼일 볼 때 화장실도 함께 들어갔다. 서로를 보초 서주듯이. 학교 선생님들은 질색을 했다. 5학년이나 된 여자 아이들이 왜 함께 화장실을 들어 가느냐며 나무랐다. 그치만 “졸졸졸” 노란 소변 외에는 우리는 감출 것이 없었다. 나는 그런 나무람보다 종종 재래식 변기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의 똥흔적이 더 질색이었다.
우리는 단짝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히 교환일기를 썼다. 평범한 줄무늬 노트로 교환일기를 쓸 수는 없었다. 나는 아껴뒀던 용돈 천원을 꺼내 자물쇠가 달린 비밀노트를 샀다. 몇 번 일기를 주고받으니 비닐표지가 끈적거렸다. 별내용은 없었다. 누가 볼까 몰래 꼭꼭 눌러쓴 서로를 향한 열렬한 우정의 서사들이었다. 몇 번정도는 서로만의 비밀언어도 만들어 썼다. 해독표 한번 흘끗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나른한 오렌지색깔의 토요일 오후였다. 비밀이 새나가지 않게 교환일기에 매달린 자물쇠를 열쇠로 열었다 잠겄다 하면서 미연이의 전화를 기다렸다. 아까 집에 오면서 점심 먹고 전화한다던 미연이었다. 물론 나만 부른 것은 아니었다. 가끔 주말 오후에 미연이와 함께 어울리게 된 미연이의 동네 친구들도 모인다고 했다. 나는 미연이에게 전해줄 교환일기를 정성껏 쓰고 나오라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를 못하면 집이 가까우니까 우리집에 달려와서 초인종을 누르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늦어질까? 1시, 아직 점심을 먹고 치우지 않은 시간 일터였다. 2시 어쩌면 엄마 심부름을 하느라고 늦어지는 것이었다. 아니면 실내화를 미쳐 다 빨아두지 못했거나. 3시, 이제 초인종이 울려야 하는 한계점인데 여기서 더 늦어지면 얼마 놀지도 못하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리고는 10분 그리고는 20분 또 30분이 지나도 전화는커녕 미연이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뜻대로 안되어 분통이 터지면 초초함을 반복적인 소변의 배출로 풀어낸다는 것을. 작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시원하지도 않은 멈추지 않는 졸졸거리는 소변을 간헐적으로 배출하면서 나는 나의 단짝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유일신 같았던 내 단짝친구 미연이에게는 나 없이도 재밌게 놀 친구들이 많았나 보다. 미연이는 그날, 나를 초대했던 사실조차 잊은 것 같았다.
"미연이, 나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