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신입사원 윤경
상쾌하지만 서늘한 겨울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15년 전 윤경은 무역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하고 커다란 목표 같은 건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어깨 위에 부모님이 미처 상환하지 못한 1년 치 학자금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1년치라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만 컸다. 딱 그 정도의 기대감으로 윤경은 글로벌 구매부에 첫발을 들였다. 열대여섯 명 남짓한 부서에 들어서자 입구 앞에 양배추 인형 트리오 같은 여직원 셋이 쪼르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오셨죠? 설마 신입… 사원?”
단박에 느껴지는 적대감이었다. 그 뒤로 남자 직원 네 명이 책상을 맞대고 직사각형의 틀을 그리고 있었다. 부서 안쪽 파티션 깊은 곳에서 나이가 지긋하니 피부색이 거무죽죽한 가운데 코가 딸기코처럼 벌건 부장이 나와 윤경을 힐끔 쳐다보고 들어갔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면접 때 입은 유일한 검정 정장에 앞코 동그란 구두를 신고 종종거리던 윤경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오늘 신입사원이 온다 하더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이윤경 씨죠?”
살짝 머리가 시원해지려는 불혹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 차장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닿을 듯 말 듯하며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녀의 자리는 그 직사각형 네 개의 책상 중 하나였다. 인사부에서 무엇이 잘못된 건가 할 정도로 글로벌구매부 모두가 그녀의 발령을 의아해했다. 대리 4년 차 한참 물오른 베테랑 직원을 빼면서 신입사원인 그녀를 배치한 까닭이었다. 의례 남자직원만 배치되던 신규라인발굴 업무에 신입사원을 배치한 것 역시 모두가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차장 두 명과 남자 대리 두 명이서 그동안 부서의 핵심업무를 수행해 왔던 것이다. 그런 팀에 소속된 것이 자랑스러울 법도 했지만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신입사원인 윤경은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눈총이 따갑기만 했다. 게다가 원래는 당연히 윤경의 사수가 되어야 할 입사 2년 차 대리가 앞장서서 불만을 토해냈다. 베테랑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벅찬데 신입사원의 사수역할까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윤경은 흘릴 수도 없는 눈물이 눈에 고이는 것을 느끼며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그렇게 윤경이 없는 업무 회의를 거쳐서 팀은 에이스와 세컨드로 나누어졌다. 아침에 그녀를 직사각형 책상 모둠으로 이끌었던 차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윤경의 사수 역할 맡았다.
“나도 부족하지만 우리 서로 잘해봅시다.”
인사부도, 부서도, 사수도, 본인 스스로조차 의지할 수 없었지만 윤경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저 남은 대출금만큼은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미쳐 이해하기도 전에 또 새로운 업무들은 몰아쳤다. 대부분 굵직하고 중요한 업무는 에이스들에게 그리고 누가 봐도 그냥 그런 하찮은 잡무는 세컨드들에게 몰렸다. 그러면서 띠동갑 차이나는 사수는 점점 윤경의 곁에 더 가까이 다가와 오랜 시간 동안 머물게 되었다.
사수와 점심시간을 공유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도, 퇴근 후 가벼운 맥주 타임이 잦은 것도 윤경은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더 많은 걸 생각할 여유도 경험도 없었다. 글로벌구매부는 너무나 야근이 많았다. 어떤 달은 자신이 퇴근길 택시비로 월급을 다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들었다. 그렇게 윤경의 첫해가 사분지 삼쯤 지나가는 가을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내려 간신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회사로 향하는 10분, 혼자만의 시간에 자꾸만 사수가 침범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역 근처에서 커피를 사주겠다는 말로, 그리고 그다음 몇 번은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또 그다음 며칠은 아예 역 입구 앞에 서 있다는 문자가 왔다. 그의 동선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윤경의 가슴이 조여왔다. 당혹감.
입사 후 첫 회식에서 못생긴 양배추 트리오가 딸기코의 부장 옆자리에 윤경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부장님 가장 싱싱한 여직원으로 대령했어요.”
그녀들은 윤경에게 부장 옆에 앉아 밀착 마크하면서 부장이 부축받으며 나갈 때까지 술을 따라드리라 시켰다. 쌍팔년도 올림픽도, 2002년 월드컵도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그 첫 회식의 충격보다도 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게 만드는 사수의 문자였다.
‘나 지금 역 앞에 너 기다리고 있다. 도착하면 전화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