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잔 네 번째 이야기 2

4-2 시집못간 언니의 질투

by 이세

“우와. 언니 오늘도 정말 새로운 맛 너무 좋아요.”

윤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서연도 눈을 들어 혜진과 윤경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서연은 이제 29살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윤경도 혜진도 본인보다 차분하고 여유 있는 “언니들”처럼 느껴졌다. 서연은 한 모금 한 모금씩 혜진이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칵테일을 삼켜갔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레몬의 새콤함 때문인지 라벤더의 부드러움 때문인지 서연의 목이 간질거렸다. 긴 시간을 참은 서연이 언니들에게 하소연하듯 술술술 이야기가 풀어져 나왔다.

“작년이에요.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왔어요. 사수래요”

서연은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 삼남매의 맏이였다. 서연은 맏딸 답게 모든 걸 처음으로 해냈다. 성적도, 대학도, 취업도. 여동생도 그 뒤를 이어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다. 동생은 입사하자 마자 큰소리를 땅땅 쳤다. 자신의 쓴 사립학교 등록금이며 어학연수 비용을 열심히 벌어 싹 다 갚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부모에게 빚을 질 일은 없었지만. 서연은 늘 동생들 핑계로 주어 지지 않은 기회들이 떠올라 서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동생이 입사하자 마자 결혼을 하겠다고 집에 찾아왔다.

서연의 부모는 도저히 여동생의 결혼을 승낙할 수가 없었다. 동생이 너무 어리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상대 남자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언니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연 역시 입사 한지 4년차 이제 막 신입의 티를 벗은 터였다. 대학졸업 즈음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론 서연은 좀처럼 연애다운 연애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서연의 부모는 그런 서연을 들먹이며 동생의 결혼을 반대했다.

어느 날 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여동생이 서연에게 생떼를 부렸다.

“아 정말 언니 너는 도대체 왜 지금 그 나이에 남자친구 하나 없어서?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언니 땜에 도대체 얼마를 기다려야 하냐구우. 도대체 왜 똥차 하나를 빼질 못 해서어?”

서연의 말문이 막혔다. 주말이면 엄마는 점심과 저녁, 두번씩 연달아 서연에게 소개팅을 강요했다. 또 어느 밤에는 대학생이던 남동생이 여동생과 함께 돌아와, 서연에게 노처녀 히스테리 그만부리고 작은 누나 결혼하게 도움을 좀 주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나갔다. 서연은 고작 29살이었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기엔 아직 내공이 없었다. 그저 존재만으로 주변의 ‘노처녀 히스테리’평가에 시달릴 뿐이었다.

참다못한 서연은 부모에게 그리고 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말했다.

“엄마 제발 내 핑계 대고 성현이 결혼 반대하지 마요. 나는 성현이가 먼저 결혼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부모의 표정이 굳어졌다.

“성현아 언니는 너가 먼저 결혼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아. 오히려 진심으로 축하해.”

여동생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는 당분간 연애할 계획도, 결혼할 가능성도 없으니까 먼저 해야 할 사람 그냥 시켜줘요.”

남동생은 의아하다는 듯 눈이 똥그랬다. 그리고는 여동생의 결혼이 그렇게 진행되었다. 서연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경험도 없었고, 끼어들었다가 질투심이나 노처녀 히스테리 같은 말을 들으면 속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몇 주 앞두고 엄마가 서연을 불렀다.

“넌 성현이 결혼식 오지마라”

“네? 왜요?”

“결혼도 안 한 언니가 동생 결혼식에 와 있으면 남들이 뭐라 하겠니?”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엄마! 제발 좀! 그만 해요. 나도 성현이 결혼 축하해주고 싶어. 대체 내가 왜 동생 결혼식을 가지 말아야 하는데요?”

그런 날카로운 다툼의 연속이었다. 서연은 ‘내가 도대체 어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 걸까’ 되물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놈의 질투심에 결혼식에 어거지로라도 오려는 거냐는 엄마의 구박도 그저 헛헛하기만 했다. 동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일 텐데 가족사진도 다 같이 모여 찍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연은 결혼식을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자식을 뺐기는 설움을 서연에게 풀 듯 악의적인 못된 말만 서연에게 쏟아냈다. 동생 결혼식에 입을 정장을 사러 백화점에 가서는 이 꼬투리 저 꼬투리를 잡아가며 서연을 흠잡았다. 결혼도 못해서 한복을 입지 못하는 서연은 뭘 입어도 뚱뚱해 보이고 꼴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옷을 다섯벌째 갈아입다 서연은 그냥 검정색의 상하의 정장을 고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 당일 혼주 메이크업을 받는 가족들 가운데 엄마는 서연에게만 화를 내며 고작 1년도 채 돈을 모으지 못하는 동생에게 너는 언니가 꾸밈비까지 받아야 겠냐며 서연의 메이크업 예약을 취소했다.

어느 새 서연이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혜진은 조용이 냅킨을 집어 서연 앞에 건냈다.

“예쁘게 화장했는데 다 번지겠어.”

윤경이 서연의 등을 쓸어주었다.

“제 돈으로 따로 예약했어요. 그래도 동생 결혼식인데 초라하게 갈 순 없잖아요.”

서연이 말을 덧붙였다.

“잘 했어. 당연하지. 하객으로 가도 메이크업하고 가는데. 당연 한 거야. 잘 했어.”

윤경이 서연의 말을 두둔하며 다독였다. 그 사이 테이블의 손님들이 절반 이상 빠져나갔다. 혜진은 잠시 멈췄던 테이블 정리를 재빠르게 마치고 턴테이블에 동물원의 8번째 앨범을 얹었다. 잔잔한 피아노의 인트로가 서연의 기억속으로 들어가 잔잔하게 어루만졌다.

눈물을 닦고 금세 울먹거림을 멈춘 서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요, 언니들 마지막 장관은 오늘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