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잔 네 번째 이야기 3

4-3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

by 이세

“근데요, 언니들 마지막 장관은 오늘이었어요.”

그 모든 엄마의 히스테리를 받아내고 서연은 오늘 동생의 결혼식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엄마는 울었고 아빠는 살짝 눈가를 찍어내고 남동생은 대성통곡을 했다. 서연은 행여나 무슨 말이 나올까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간간히 친척들이 와서 동생이 먼저 시집가서 서운해서 어쩌냐는 인사치레를 할 때면 그냥 웃었다. 그렇게 결혼식이 마무리되고 혼주부모님들과 신랑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감사인사까지 마쳤다.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면 되는 그 순간, 엄마가 다시 날카롭게 서연을 찾았다. 엄마는 한복을 입고 짙은 혼주 메이크업을 한 채, 긴 머리를 굴곡지게 웨이브 넣고 역시 메이크업을 한 서연의 팔을 꽉 잡았다. 아까 동생네 부부와 함께 인사한 동선을 되짚어 엄마는 서연만 데리고 따로 인사를 시켰다.

“저희 큰딸이에요. 아직 시집을 못 갔어요. 어디 싼값에 팔 수 있음 팔아주세요. 저희 딸이 에요.”

입도 벙끗 못하고 서연은 엄마에게 붙들려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했다. 얼굴이 벌개지다 못해 하얗게 질려선 질질 끌려다니다 돌아왔다. 그렇게 피로연을 마치고는 돌아온 참이었다. 서연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그 상황이 웃기다는 듯 깔깔거리고 있었다. 서연의 이야기를 듣는 두 언니들도 함께 웃었다.

“아니, 우리 지금 90년대 TV문학소설 듣고 있는 거 아니지?”

윤경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오는 노래도 2000년에 나온 거야. 20년도 더 된 음악이라고.”

혜진이 맞장구 쳤다. 그녀들은 이미 격동의 세월을 다 겪어낸 후였다. ‘2020원더키디’의 세상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턴테이블에서는 동물원 8집의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가 흐르고 있었다. 혜진은 그녀들에게 새로운 한 잔이 필요하겠다는 걸 느꼈다. 윤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늘 마시던 걸로 한 잔 더 줄까?”

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도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저도 언니가 마시는 걸로 한 잔 더 마셔보고 싶어요.”

이번엔 혜진이 서연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주한 열기가 사라진 “달잔”에서 혜진의 손만 바쁘게 움직였다. 혜진은 길고 매끄러운 유리잔을 꺼내 진토닉 두 잔을 준비했다. 서늘해진 입구를 통해 상현이 오레오를 조심스레 안아들고 들어왔다.

“길을 잃을까봐 데려다 주러 왔어요. 맥주 한잔 주세요”

아마도 붐비는 “달잔”에서 일찍 나가 아쉬웠었나보다고 생각했다. 혜진은 두 여자들에게는 진토직을 동시에 내어주고 상현에게는 쌉싸름한 맥주를 내주었다. 상현은 다시 그의 고정석에 앉아 안고 들어온 오레오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야옹”

오레오는 저녁 마실이 꽤 신났던지 상현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쫓아가며 장난에 몰두했다. 윤경은 진토닉을 절반 정도 털어 마셨고, 서연은 조금씩 음미하듯 한모금을 삼켰다. 아까와는 다른 묵직하고 깔끔한 맛에 서연의 마음도 머리 속도 정리가 되는 듯했다.

“억울해요”

서연이 숨을 깊게 내쉬며 말을 토해냈다.

“그래도 여기 오니까 숨이 쉬어져요.”

서연의 등을 쓸던 윤경의 손가락이 다시 테이블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혜진은 눈으로 부드럽게 서연을 다독이면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서연이 흠뻑 음악과 술에 젖어 후련하게 집에 돌아가기를. 서연의 다음 잔은 무엇으로 줄까 고민하며 혜진은 특유의 오묘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