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좀 그만하고 싶다
사는 공간을 바꾸기 위해 짐을 싸고 청소하고 다시 짐을 풀고 정리하는 이사라는 모든 과정은 정말 스트레스 가득의 일이다. 나는 지난달 가장 추운 날(1/22일 TMI) 또 이사를 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 손가락 안에는 들지만 제대로 세어보면 꽤 많이 이사한 축에 속한다.
어려서는 딱히 이사라 할 게 없었다.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척척 해주었고, 실제로 한 집에서 결혼 전까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사라 해봐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정도, 집 고칠 때 짐을 빼었다가 다시 들이는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첫 이사를 했다. 이사랄 것도 없이 신혼집에 가전과 가구를 들이고 남편의 짐과 나의 짐을 옮겨 '우리 집'을 함께 꾸리기 시작했다. 새집에서의 시작은 참 즐거웠다. 청소업체도 부르지 않고 둘이 싱크대며 바닥을 닦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집을 채웠다. 단 둘이서 사는 집.
그런데 그 단둘이서 사는 집에 도둑이 들었다. 내가 막 임신해서 배가 볼록 나올 즘이었다. 둘 다 출근을 하니 낮시간에 비어 있을 때 도 선생이 다녀갔던 것이었다. 퇴근하고 도어록이 아예 안에서 락이 걸린 채 문이 열리질 않아 사람을 부르고 기다리는데 작은 방 창문이 열려있는 걸 발견했고 그 길로 바로 경찰을 불렀다. 부모님 도움 없이 둘이 모은 돈을 합쳐 전셋집을 구하느라 그마저도 대출을 받아 구한 귀한 아파트 전세였는데, 시세보다 5천이나 쌌던 이유는 끝라인 1층 아파트였기 때문이었다. 난장판이 된 집은 처참했고 그 광경을 보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신혼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 무서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도망치듯 새집을 구해 어른으로써 첫 이사를 했다. 이사하느라 더 큰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알뜰살뜰 모아 얼른 갚아야겠다 생각했다. 역시나 전세였다. 이번엔 1층과 맨 꼭대기를 피해서 제값으로 나온 집으로 골랐다. 이 집에서는 목돈을 모을 만큼 좀 오래 살길 바라며 제발 좋은 주인 만나서 오래 살았음 했다. 그런데 웬걸, 딱 2년 만기가 지나고 나자 집주인이 자기가 cash flow가 필요하다면서 월세를 내고 살던지 아니면 나가라고 통보를 했다. 나는 매달 250만 원씩 월세를 내며 살 수는 없었다. 다른 전세를 알아보겠다고 하자 바로 새로운 세입자들이 집을 보러 왔다. 아기가 있는 우리 집에 외국인 렌트수요자들이 와서 여기저기 들춰보고 드나드는 게 매우 불쾌했다.
그렇게 2년 만에 다시 이삿짐을 쌌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바로 옆동으로 인사해도 이사비용은 전혀 할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한국은행 기념주화 액자도 귀중품으로 생각하고 따로 챙겨놓았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세 번째 이사 때는 둘째가 뱃속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임신해서 이삿짐을 싸고 풀려니 집주인이 그렇게 밉고 야속할 수가 없었다. 매번 남의 집에 전세로 가서 더러운 벽지며 장판, 붙박이 가구들을 벅벅 문 질러 닦아내고 있자니 세상 서러웠다. 싱크대 문짝이 고장 나도 쉽사리 고치지도 못하고 누런 벽지 얼룩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가 소유한 낡은 아파트를 내어줘 자기 집처럼 고치고 사는 동생이 하염없이 부러웠다. 그렇게 세 번이나 이사를 하고는 이를 악물고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돌쟁이 아기를 아기띠로 메고 이번엔 내가 사서 오래 살집을 알아봤다. 친정 뒷길로 올라가면 있는 언덕배기 다세대 주택부터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주변 나와 있는 매물들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다. 내 집을 사서 나도 남부럽지 않게 고쳐서 오래 살아야지.
참 신기했다. 여러 집을 보러 다니면서 집을 처음 사보는 나로서는 어떤 기준으로 집을 골라야 할지 많이 듣고 공부해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는데, 딱 그 집에 들어서자 한눈에 느낌이 왔다. 여기다. 심지어 전주인이 육아 때문에 집을 거의 비워두어 방치된 집이었는데 그게 싫기보다는 이 안쓰러운 집을 내가 어서 환하고 밝게 고쳐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육아 때문에 집을 비워둔 전주인은 홀가분하게 나에게 집을 팔며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이사 들어오는 나를 되게 의아하게 바라봤다. 이 동네 아이 키우기 너무 불편하지 않느냐고. 평생을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친정 근처에 내 아파트가 생긴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그렇게 어린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네 번째 이사를 했다. 이제 내 집이니까 다시는 이사 같은 거 안 할 것처럼 그렇게 그 집에서 8년을 살았다. 아쉽게도 인테리어 공사 같은 건 역시나 하질 못했다. 집을 사느라 대출을 많이 받은 통에 간신히 도배만 해서 하얗고 환한 집으로 변신시킨 게 전부였다.
내 집이 생기자 세상이 아름다웠다. 남산 꼭대기에서 야경을 바라보면 저 반짝이는 불빛 속에 내 명의로 된 불빛이 하나는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예쁘고 아름답고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 곳에서 아이들 초등시절을 보냈다.
삶이라는 게 늘 뜻대로 가질 않는 것이라 평생을 살 것 같았던 그곳에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애들 교육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국어학원 수학학원 영어학원이 안보였다. 정말로 아예 갈 수 있는 학원이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간신히 영어학원을 다닐 수가 있었다. 대치동으로 갈까 목동으로 갈까 하는 말도 나왔지만 결국 멀리 이동하진 못했다. 역시나 친정에서 가까운 그나마 학원들이 많고 아이들이 많은 곳을 찾아 다시 전셋집을 구했다. 우리 집은 쪼꼬미 아이 둘을 키우시는 부부에게 오래오래 편히 살으시라 전세를 놨다. 그렇게 다섯 번째 이사를 했다.
다시 전세로 이사를 하려니 심난했다. 이사를 하며 티브이가 깨졌고 아이방 가구가 부서지고 멀쩡하던 가전이 고장 나버렸다. 이사를 하도 해서 그런가 척척척 AS 신청을 하고 고쳐냈다. 지워지지도 않는 남의 집 낡은 아파트에 곰팡이를 닦고 있으려니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중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동안에는 이 집에서 제발 오래 살길 기도했다. 그러나 사람의 촉은 날카로운 것. 나보다 3-4살 어린 집주인 부부는 아무리 봐도 들어와 살고 싶은데 당장 돈이 부족해서 또는 현거주지와 날짜가 안 맞아서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전세를 놓는 것 같았는데 역시나. 칼같이 2년이 지나자 집을 비워달라고 연락이 왔다. 지난한 이사의 과정을 또 거칠 생각을 하니 더 심난해졌다.
집 값은 또 오르고 전세가 역시 많이 올랐고 심지어 전세들이 귀했다. 4년만 살게 해 주지 거 참 야멸차게 2년 만에 쫓아내는 집주인이 또다시 얄미워졌다. 그렇게 지난달 힘겹게 여섯 번째 이사를 마쳤다. 역시나 같은 동네 길 하나를 건너오는 이사 역시 깎아주지 않는다. 더 낡은 집으로 이사했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그마저 고마웠다. 힘들게 이사를 마치고 나니 왜인지 이번집은 오래 살 수 있을 거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 힘들었지만 이번 이사가 우리 가족에게는 좋은 전환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새 집은 낡았지만 밝고 환하다. 오래돼서 찬바람이 들어오는 듯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따뜻해졌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를 지내보려고 한다.
연일 대통령이 집에 대한 언급을 한게 뉴스에 나오고 있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아닌 보금자리의 역할만 하는 날이 과연 올까? 이사를 여러 번 하면서 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분명 공간으로서의 나와 잘 맞는 곳, 안 좋았던 곳이 있었고 다시 살고 싶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다. 안전하고 안락하게 거주하고 싶다.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싶다. 나는 그래서 다주택자가 되는걸 꿈꿔본다. 꿈만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