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순례주택을 읽고

임순례로 개명할까도 생각했어

by 이세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었기 때문이다. 괜스레 부산하게 여기저기 학원들에서 진행하는 입시설명회 같은 걸 다녀왔다. 더 마음이 심란해지기만 했다. 최근에는 두 아이에게 학원도 하나 강요했다. 집 앞에 있는 논술학원이었다. 왜인지 또 늦은 것만 같아서 닦달하듯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2주간 수업을 듣더니 둘째 아이는 울며 집에 왔다. 학원이 집에 못 가게 붙들어두었다고 했다. 큰아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씩씩대며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고 화를 냈다.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나도 그렇게 늦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해 나는 또 아이들을 쥐어짜고 있는 건 아닐까.

순례주택은 그 집에 못 가게 하는 논술학원의 큰아이 1주 차 과제 책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책을 다 읽은 아이가 나에게 그 책을 내밀며 "엄마 이 책 재밌어. 한번 읽어봐." 라며 건넸다. 그렇다면 엄마가 또 읽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무슨 지역사회프로젝트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술술 읽히는 소설책이었다. 제목부터 인상 깊었던 '순례주택'. 몰입감 있게 잘 읽었다. 줄거리며 여러 가지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기도 비현실적이기도 해서 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읽었던 것 같다. 때밀이로 건물주가 된 풋 노인, 이기적이고 어른스럽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난 어른스러운 중학생, 양심과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면서 왜 누군가는 다차원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왜 누군가는 한 점만을 고정해서 바라보는 걸까. 왜 누군가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고민하고 왜 누군가는 나만 잘살면 되는 만족감에만 취해 있는 걸까.

순례 씨는 나쁜 방법으로 돈 버는 배우자와 이혼하고 아들이 그 배우자의 재산을 상속받으려 하자 자신의 유산을 주지 않겠다 한다. 자신만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근데 건물주가 된 건 노력도 노력이지만 로또 같은 정부의 토지보상금도 컸다. 수림이는 병약한 엄마의 둘째 딸로 태어난 까닭에 엄마 품이 아닌 할아버지의 여자친구 품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가장 어른스럽고 현실감 있게 살아간다. 할아버지의 집을 빼앗은 엄마를 나무라고 학벌로만 사람을 재단하는 부모를 부끄럽게 여긴다. 수림의 아빠는 누나들 밑에 사랑받던 남동생으로 공부도 잘해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대학교수만 꿈꾸며 경제력이 없다. 180센티가 넘는 큰 키에도 신체활동을 통한 돈벌이는 하찮게 생각하며 그저 누나들에게 지원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 수림이의 언니인 미림이는 첫째로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동생을 밀어내고 오로지 본인의 영달을 위해 성공하는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매진한다. 부모가 학원비와 과외비 때문에 수백만 원의 빚을 진 현실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수림이의 외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빌붙어 사는 딸네 가족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떼어내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다 공사장에서 사고로 사망한다. 할아버지의 사망으로 할아버지의 경제력을 피 빨던 수림이를 제외한 가족들이 제대로 현타를 맞는 상황들이 그려진다. 누군가에게는 고소하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인 상황들.

수림이네 1군들이 좀 더 당했으면 싶은 그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처절한 생활고의 묘사는 없지만 16살의 눈높이에서 담백하게 상황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항상 선과 중심을 잡고 있는 순례 씨. 국경 없는 의사회를 국경이 없어서 좋아하면서도 본인은 늘 선과 경계, 그 원칙을 잘 지킨다. 다 읽고 나니 너무 재밌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순례 씨는 누굴까? 미림이 수림이 엄마는 누구일까. 나는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오늘은 아들에게 한번 물어봐야지. 너는 어떤 장면이 가장 재미있었냐고. 엄마한테 읽어보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냐고. 가뜩이나 힘들다는 아이들에게 학원을 하나추가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 덕에 내가 책 한 권을 더 읽어서 살짝 죄책감을 덜었다. 나도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게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솔직한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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