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 한 사람

인심은 곳간에서 납니다

by 이세

나는 형제들이 버글버글한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딸 둘 아들 둘. 아빠도 형제가 6남매, 엄마도 5남매. 때때로 우리 집엔 부모의 형제나 사촌이 와서 머무르기도 했다. 당연히 내 방이란 건 없었다. 한 방에서 오글오글 4-5명이 요를 깔고 잤다. 자다 보면 동생이 뜨끈하니 오줌을 싸기도 했고 서로 이를 나눠 갖기도 했다.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다. 끼니를 굶어본 적 없었고 매주 주말이면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나는 항상 학원을 다녔고 부모는 내 학비를 기꺼이 지불했다. 나는 내가 큰 결핍 없이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40대가 되면 불혹이라길래 나는 내심 많이 기대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니 얼마나 단단하고 멋진가. 그런데 이게 웬걸? 불혹을 넘기며 내 감정과 인식이 배를 탄 듯 출렁거린다. 나는 요새 친정집에 잘 가지 않는다. 시댁도 마찬가지다. 부모님들의 걱정 섞인 소리들이 더 이상 감사하게 들리지 않고 온몸이 따가워서 이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꾸 남 탓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내 마음의 문제란 것도 알고 있다.

내 마음은 지금 굉장히 가난하다. 질투와 비교 서운함으로 가득하다. 여유와 감사함이 사라졌다. 가족들이 건네는 말이 따뜻하지가 않고 자꾸 뾰족하게 느껴진다. 서운하고 억울하다. 동생이 무심코 던진 말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듣기가 싫다. 왜 너는 늘 잘 사는 듯 보이다가 그렇게 사고를 치냐는 소리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속이나 시원하게 나도 되받아 치면 좋으련만 늘 그럴싸한 말들은 뒤늦게나 떠오른다. 너나 잘하라는 말.

나 스스로 나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채 침입한 사람들에게 화도 못 내고 혼자 꿍해서 고슴도치가 되었다. 나는 늘 그랬다. 그리고는 뒤늦게 쫓아오는 예민한 아이, 성격이 꿍하고 날카로운 아이, 한번 화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억울하다. 너도 내 입장이 되어 봐라, 한번. 누구나 남의 커다란 상처보다 자기 손톱밑에 가시가 더 크고 아프다 느낀다. 내 아픔이 커다란 상처일지 손톱밑 가시일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더 이상은 남들이 가시라 하든지 말든지 그냥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그 감정 정도는 존중해 줄 생각이다. 나는 지금 마음이 너무 가난하다.

오늘은 칠순을 앞둔 부모가 연락을 해서 자식들과 그 가족들을 다 데리고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동생들과 의논해서 계획 좀 짜보라는 연락이 왔다. 고생해 온 부모를 기꺼이 기쁘게 하기 위해 여행 플래너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인가 해보려고 시도도 했었고 하기도 했었다. 20명 남짓되는 가족들을 다 의견을 모아서 저녁 한 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뒤늦게 쏟아지는 원망들이 듣기가 싫었다. 왜 이렇게 했냐는 원망. 왜 이것밖에 못했냐는 원망. 그리고 불쑥 왜 좋은 건 다른 자식들 주고 늘 뒤치닥 거리는 나 시켜요 라는 억울함이 쑤욱 올라왔다. 나의 부모는 늘 장녀의 나의 역할에 대해 아쉬워했다. 너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글쎄요. 난 더 이기적이었어야 했다. 더 더 울고 떼쓰고 내 몫을 챙겼어야 했다. 기다리면 알아줄 것이라고 때가 되면 내 몫도 생길 것이라고 하염없이 믿고 조용히 있지 말았어야 했다.

"아빠 저는 이번에는 여행 못 갈 것 같아요. 아빠는 자식들이 많으니까 시간이 맞는 자식들 데리고 여행 가시면 좋을 거 같아요"

더럽게 치사한가? 내가 사춘기가 올 즈음 나의 부모는 나를 앉혀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리는 자식이 넷이나 되니 너 하나쯤 망쳐도 다른 자식들이 있다고... 다른 부모들처럼 자식에게 절절 거리는 부모 안 한다고. 그러니 네가 사고를 치든 엇나가든 네 인생을 망치든 말든 우린 니 뜻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내 깜냥에 무슨 일탈이 있었겠냐마는 나는 공부하느라 일탈할 시간도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도 배짱 한번 부려본다. 자식이 그리 많은데 나 하나 빠진 들 티나 나시냐고. 깨물어 아픈 자식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 나는 부모도 형제도 너무나 불편한데 이게 오롯이 내 탓이겠냐고. 내가 아주 못돼 쳐 먹고 이기적이어서 늙어가는 부모의 허전한 맘도 알아채지 못한 채 또 나만 아프고 힘들다고 쟁쟁 거리는구나. 그게 사실인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한겨울 전셋집에서 쫓겨나 간신히 구한 전세로 이사할 때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이제 와 집이 그렇게 넓고 좋다며 집들이 언제 해? 묻는 동생들의 인사치레가 귓가에 까칠하다. 그래 내가 자꾸 이런 것들이 거슬려해서 예민하단 소리를 들었지. 더 이상 맘속에 담아두기도 싫다. 나는 지금 마음이 너무 가난하니까. 여유가 없으니까. 바닥난 그릇을 박박 긁어대 봐야 나오는 건 없다. 나는 사실 지금 어쩌면 마음뿐만 아니라 사실은 진짜 가난해서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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