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기들
오늘 친정집에 가서 고모가 맡겼다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그리고 클라리넷을 찾아왔다. 의도인지 의도치 않은 것인지 엄마 아빠는 집에 없었다.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맞는다.
넌 누구냐?
손자 손녀가 13이나 되는 늙은 나의 조부모는 고작 3번째인 나를 한참 찾는다.
왜 한참 안 왔어?
바빴어
삐껴서 너 안 오는 줄 알았지.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나.
그냥 오기 싫었다는 말을 그네들은 이해할까?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나의 부모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은 악기를 받아왔다. 나도 만져보고 싶어서.
집에 돌아와 내 아이들과 악기를 펼쳐본다. 플루트가 두 개. 하나는 많이 녹이 슬었다. 바이올린은 줄이 녹아내리듯 흘렀다. 저 악기는 어떤 상태일까. 나는 저 악기를 살려 낼 수 있을까
내일은 저 악기를 들고 집 앞 악기 수리점에 가볼 생각이다. 바이올린.
갖고 싶었다. 연주해보고 싶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고귀한 바이올린.
그네들을 만지며 나는 힘겨웠을 내 부모의 시절을 어루만진다. 나에게 돈이 없어 악기를 시킬 수 없다며 나를 포기시킨 부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는 부모가 된 마흔넷의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이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누가 보면 너무나 가진 게 많아 투정이나 부리는 어리광쟁이 철부지일 테니까.
그네들의 켜켜한 삶을 이제야 면면히 살피는 나는 조금은 느낄 수 있을까. 그 힘든 파고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 건네는 게 나를 향한 마음이었다는 걸.
고모는 말했다. 잠시 떨어져 지내며 생각이 정리되면 살아있는 부모에게 너의 이야기를 건네라고.
나는 단 한 번도 내 마음을, 내 이야기를 건넬 용기를 갖지 못했다. 살아있을 때 전할 수 있을까. 건네고 싶긴 한 걸까? 남은 시간이 짧다는 걸 느껴가는 요즈음. 그럼에도 철부지 자식은 뒤늦은 후회나 하려나보다.
내일은 저 악기들을 들고 소리를 내게 가보려 한다. 나의 소리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생 처음 홀연한 자유를 느낀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가슴에 안은 저 악기들이 소중하다. 잘 고쳐 연주하고 싶다. 제 소리를, 예쁜 소리를 찾아 주고 싶다. 저 아이들이 제 소리를 내는 날, 나도 내 소리를 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