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어린이에서 소녀로 자라기

by 이세

누군가 내 등을 손으로 스륵 쓸었다. 내 뒷자리에 앉는 수연이였다. 5학년 2학기가 되자 봉긋이 올라오는 가슴 때문에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나는 이미 4학년부터 속옷 착용을 시작했던 터였다.

요즘 들어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혜민이가 생리를 시작하면 아빠에게 말해서 장미꽃을 사 오라고 할 거야.”


생리가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오후 보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남자아이들은 다 나가라고 했다. 시끄러운 개구쟁이들은 축구를 하러 나갔다. 절반이 빈 교실에서 보건 선생님은 시청각 자료를 틀었다. 15분간의 성교육 비디오가 끝나고 보건 선생님은 이번엔 칠판에 어려가지 단어를 썼다. “자궁” “월경” “수정란” 등이었다. 요약하자면 곧 소변과는 차원이 다른 피가 나올 것이란 소리였다. 아프진 않을까, 몸에서 피가 나와도 되는 걸까. 어렴풋한 느낌과 다르게 전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요즘 들어 책을 읽다 보면 도무지 뜻을 유추할 수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보통은 계속 읽다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는데 말이다. 책 읽기는 나의 가장 소중한 취미 중 하나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글씨를 모르던 6살,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모와 삼촌의 책장을 바라본다. 간호사였던 막내고모의 해부학 전공서적들과 미술을 전공한 둘째 고모의 화첩들 가운데 ‘어린 왕자’를 발견했다. 나의 소중한 첫 번째 책이었다. 나는 어린 왕자의 삽화 중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모자 모양으로 묘사된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나는 보아뱀에 홀렸다. 그런 까막눈이던 시절을 지나 글을 읽게 되자 읽기에 날개를 달고 속도가 붙었다. 더 이상 그림 많은 책만 골라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그림만 보던 ‘어린 왕자’를 읽기 시작하며 나의 세상은 책과 책을 연결하며 이어졌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자꾸 책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엄마 창녀가 뭐야?”


엄마의 입이 벌어진 채 대답이 없었다. 끝내 대답이 없었다. 괜한 걸 궁금해했구나 생각하며 다시 책 속으로 숨었다. 책 속에서 나는 그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왜 내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나의 부모는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저 엄마가 때때로 사주는 책들이 나는 너무나 좋았다. 7살에 사주었던 한국전래동화와 2학년 때 사준 파란색 양장표지의 세계문학 전집, 그리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위인전들. 나는 책 읽는 게 진짜 좋았다. 어느 순간이 되자 어린이 책들만 모아놓은 책장을 벗어나서 엄마 아빠의 책장으로 독서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많아졌다.


“엄마 아빠 대체 아빠 배속에 아기씨가 엄마 배속에 가서 아기가 생긴다는데 그 아기씨는 엄마에게 어떻게 옮겨 가는 거야?”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서 저녁을 먹는 아빠를 앞에 두고 나는 질문을 했다. 너무나 의아해서.


“아기는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거야? ”


엄마는 지난번 보다 더 놀래 얼굴이 벌게졌다. 아빠는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에게 짜증 섞인 타박을 했다. 대체 일하고 온 가장이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나는 정말 너무나 궁금했을 뿐이다. 아기씨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 거냐고. 투명한 호스가 연결이 되는 건지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 수 없는 길이 생기는 건지 남동생이나 남자인 동급생 옆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면 아기가 생기게 되는 건지 그 과정이 궁금했다.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엄마랑 아빠가 밥상을 앞두고 싸우는 통에. 그 이후로도 한참을 나는 정말 너무 궁금했다.

그해 가을에 첫 생리를 시작했다. 보건 시간에 배운 것과는 너무 달랐다. 그게 시작인지도 몰랐다. 배가 너무 아팠고 설사하듯 갈색의 분비물이 팬티에 묻었다. 이게 왜 이러지? 설사를 이렇게 하는 건가? 나 왜 이러지? 자꾸 팬티에 묻는 이 불편한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따지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울면서 화장실에서 울고 나왔고 엄마는 그게 바로 생리라고 했다. 장미꽃은 없었다. 케이크도 축하한다는 말도 없었다. 백운슈퍼에서 생리대를 사서 팬티에 붙이는 것을 배웠고 그게 시작이었다. 엄마가 늘 말했던 장미꽃은 나에게도 내 동생에게도 없었다. 더 이상 하얀 옷은 입을 수 없었다. 다리를 번쩍 올리며 뛰어다니던 고무줄놀이도 그만뒀다. 행여라도 붉은 피가 보일까 불쾌한 냄새가 번질까. 6살의 마음에서 더 자라지 못하고 몸만 12살이 된 아이는 그저 불편하고 무서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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