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잔 다섯 번째 이야기 3

보내는 이와 받는 이

by 이세

“처음 아들을 돌보러 오셨을 땐, 엄마는 고양이 있어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며느리가 좋다는데 어쩌겠냐고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고양이 털이 치워도 치워도 날리는 걸 보며 저에게는 고양이 좀 다른데 보낼 수 없냐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는 늘 펄쩍 뛰었어요. 어떻게 가족을 버리냐는 거죠.”

윤재의 이마가 심하게 일그러졌다. 혜진의 눈가도 조금 일렁거렸다.

“그러게요. 정말 어려운 상황이네요.”

“그냥 정말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말도 안 통해요. 엄마도 정아도요.”

혜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블랙맨해튼을 한 모금 삼켰다. 윤재도 말을 고르듯 혜진을 따라 잔을 들어 한 모금 한 모금 칵테일을 넘겼다. 그리고는 이어 터져 나오는 듯한 이야기를 다시 토해냈다.

“지난주에 엄마가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왔더라고요. 돌쟁이 아들이 팔에 살짝 붉은기가 있었는데 여기 요 사거리 있는 큰 피부과 있죠? 그 유명한 곳이요. 거기 데려가서는 저희 아들이 아토피라며 진단서를 끊어 오셨더라고요.”

“아… 다들 많이 놀래셨겠네요.”

혜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멀리 오레오에게 장난감을 흔들어주던 상현의 표정 역시 찡긋 했다. 윤재의 표정은 많이 일그러져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아내에게 싫은 소릴 하셨어요. 이건 내 뜻이 아니고 의사의 의견이라고. 왜 우리 귀한 손주가 고양이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요. 네가 엄마라면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 계속 키우겠다 고집할 순 없는 거 아니냐고요. 처음으로 아내가 아무 말 못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부부가 못하면 어머님 본인이 동물병원 데려가서 안락사시키겠단 말도 하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아내가 겨우 포기하더라고요. 바로 고양이들 보낼 곳을 알아봤어요. 그리고 어제 새로운 주인에게 보냈고요.”

혜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혜진의 두 입술이 살짝 벌어진 채 그대로 굳은 표정으로 한참을 있었다. 윤재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려니 가슴이 답답한지 계속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윤재는 상현의 주변을 맴돌며 장난치고 있는 오레오를 말없이 한참 응시했다.

고개를 떨구며 윤재가 말했다.

“잘 지켜주고 계신 것 같네요.”

혜진은 시선을 떨구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각자의 잔을 잡고 각자의 마음을 쓸 듯 칵테일을 삼켰다. 혜진은 오레오의 웅크린 둥그스름한 라인을 쓰다듬었다.

혜진도 처음부터 오레오를 키울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 두 마디의 간신히 숨이 붙은 아기고양이. 처음에는 아기고양이를 받아줄 수 있는 임보처를 찾아보았다. “달잔”을 운영하여 아기고양이 수유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혜진은 인터넷에서 고양이를 부탁하는 카페를 찾아 아기고양이의 생사를 넘길 참이었다. 그곳에서 혜진은 고양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기고양이의 임보를 맡아주겠다는 글을 찾아냈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고양이 양육에는 너무나 부적합했기 때문에 누군가 아기고양이를 맡아 시간에 맞춰 분유를 먹여주겠다는 약속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간신히 숨이 붙은 아기고양이를 안아 들고 임보자를 만나러 나갔는데 이제 막 만난 아기 고양이를 보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임보예정자를 보고 혜진은 전혀 마음의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여러 가지 단어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2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요. 저는 그 꼴은 못 봐요. 저는 끝까지 아이들의 끝까지 지켜주려는 편이거든요.”

혜진은 차마 품 안의 아기고양이를 그녀의 품에 넘겨주지 못하고 다시 오레오를 안아 “달잔”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그녀의 말투가 혜진의 귀에 많이 거슬렸다. 그 순간 혜진은 자신이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도, 아무리 “달잔”의 시간이 바빠도 아기고양이를 그분께 맡길 수 없겠다 싶었다. 도망치듯 뒤돌아 나와 혜진은 아기고양이를 꼭 끌어안았다. 이름도 짓지 못했던 오레오의 아기시절이 떠올라 혜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윤재의 신청곡이 유달리 공기에 감기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항상 삶의 구석을 긁어주듯 시원한 가수의 노래가사가 오늘따라 그냥 긁히는 느낌으로 귓바퀴를 스쳐갔다. 혜진은 가슴속 모래알을 내리면서 남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주변을 다시 청소했다. 윤재는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돌아갔다. 유난히 써늘한 달잔의 저녁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달잔 다섯 번째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