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은 절대 알 수 없는 타인의 통증. 엄마는 통증이 시작되면 나에게 전화를 건다. 새벽 두시, 5시에도. 자다가 벨소리가 들리면 마약성 진통제를 들고 간다. 지금 25 펜타민 패치를 붙이고 있다. 처음에는 12 패치를 붙였는데 50, 100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상대방의 통증을 모르니 내가 조절할 수도 없고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까지는 25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너의 고통을 느낀다고.
느끼다 : 감각으로 알다.
고통 :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
통증 : 몸에 아픔을 느끼는 증세
과연 타인의 고통이나 통증을 우리는 느낄 수 있을까. 그의 아픔을 머리로 해석은 되지만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환자 옆에서 환자의 고통, 통증을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고 단지 내 몸이 지치고 피곤해진다. 정신적 고통이 생긴다.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몸에 피로가 축적되어 아파지는 거다. 환자의 고통, 통증이 나를 지치게 하는 거다.
엄마가 물을 넘기면서 호스피스병동으로 가려던 계획을 가정형 호스피스로 일단 바꿨다. 증세가 심해지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요양병원이 어떠냐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다. 요양병원에서 몇 개월 더 삶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게 내 생각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끝까지 연명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기준으로 존엄하게 죽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외부로부터 영양제를 공급 받으면서 누워만 있는 게 나라면 절대 거부할 것 같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하다보니 내 생각을 강요 아닌 강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무작정 연명은 의미 없다고 말하고 호스피스로 가겠다고 해서 퇴원한 것인데.
지난 번 친인척과 마지막 작별을 할 때 요양병원으로 가지 그러냐는 말에 엄마가 '요양병원 가면 죽는대'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모가 지난번 엄마와 통화할때 '요양병원 가면 죽어'라고 한 말을 귀담아 들은 모양이다. 그게 아닌데. 엄마는 암으로 인해 이미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고 조금더 연명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이고 좀더 빨리 통증과 이별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누구나 마지막은 온다, 삶의 끝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평생의 자신 철학이 아닐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오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공포, 불안,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 역시 마지막에 서 있지 않아 그 심정을 잘 이해를 못 하지만 인간답게 죽고 싶다. 스스로 먹고 움직이지 못 하고 외부에서 주는 영양제에 의지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거야.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 죽는 거야.
개는 20년 사람은 80년이 평균 수명이야. 남자는 81세, 여자는 83세. 엄마는 평균수명을 산 거야.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엄마 혼자 거기 있어야 해. 호스피스에 가면 내가 옆에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