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뒤뷔페와 이만익

by 신기루

오늘은 햇살이 참 좋다. 어디론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어제는 눈이 폴폴 날리는데도 굳이 나갔다. 걷다가 넘어질까봐 잘 나서지 않는데 며칠간 영하 17~18도 덕분에 집콕만 하다가 나가봤다. 그림 전시를 보러 가는 건 아주 짧은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가서 그림도 보지만 사람을 만나는 거다. 알지 못하던 사람을. 그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때로는 아직도 살아서 창작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얼마 전에 본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지금 90이 넘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하늘로 가 버린 경우도 있다. 어제는 두 분 다 하늘로 갔다고 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의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해서 찾아갔고 한 사람은 우연히 그 곳에 있어서 만나게 되었다. 장 뒤뷔페는 초창기부터 회화를 대할 때 뭔가 다르게 표현하려고 애쓴 것 같았다. 모나리자도 우리가 알던 모나리자가 아니게 그린 것을 보면.

그러다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가 나왔다.

전시회를 간다는 건 그의 삶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그가 그림에 표현하고자 하는 것, 그의 생각, 삶에 대한 관점, 철학을 알 수 있어서 재밌는 것 같다. 그림은 감각적으로 느끼면 되는 건데 그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예술 철학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한 사람이 살아내고자 했던 삶의 여정을 볼 수 있어서 재밌는 것 같고 배울 점도 있다. 뒤뷔페는 남과는 다른 표현, 틀에서 벗어나려 한 건 분명한 것 같다. '아, 재밌다.'하면서 그림에 빠져드는 그 순간이 좋고 그림 감상하는 동안은 아무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자주 그림을 보러 간다. 남들은 도슨트를 따라 떼로 무리지어 열심히 듣는데 난 그림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혼자 다닌다. 이어폰으로 해설을 듣기는 한다. 그냥 보는 것보다는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데 도슨트 따라 다니면 앞사람들 때문에 그림이 가려서 잘 보기 어렵고 듣는 건 일단 지루하다. 보러 갔기 때문에. 이리저리 맘대로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하다 보면 금방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한참을 보다 보니 다른 전시가 또 있다고 했다. 이만익 화가의 전시가 있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2개를 보게 되었다. 횡재~

그 역시 초창기에는 그냥 남들과 비슷한 회화가 시작되었으나 점점 굵은 선으로 바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에 이르렀다.

굵은 선과 선명한 색감으로 시원시원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면 역시 즐거움이 솔솔 든다. 그리고 뒤뷔페처럼 '재미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올 때 신나고 '오늘 그림 감상도 잘 왔구나'라고 느낀다. 호랑이 그림이나 주몽 그림,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나 박목월의 시를 읽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들도 재밌다. 그런데 김소월의 시를 읽고 그린 그림을 보고 있는데 안내하는 분이 와서 갑자기 설명을 해 줬다. '산수갑산 가는 길' 을 사람들이 좋다고 하며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근데 난 그 그림이 설명 듣기 전부터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자세히 보지 않았던 그림이다. 제목도 보기 전에. 아, 내 느낌이 맞구나. 뭔가 힘들어 보이는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어두운 배경에 흰 눈이 내리고 산을 배경으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냥 딱 봐도 힘들어 보인다.

난 분홍 복숭아가 있는 그림이 좋다. '망향'이라는 그림인데 작가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림이라 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든다. 그외 대작들도 좋았고 이중섭을 기리며 그린 '이중섭의 귀향'도 맘에 들었다.

서양과 동양의 만남을 위해 기획한 전시는 아니었지만 나는 뒤뷔페와 이만익이 그렇게 보였다. 서양미와 동양미를 둘 다 너무 잘 드러냈다. 둘 다 공통점은 선이 굵은 것이다. 색깔도 많이 쓰지 않고 단순하다. 비슷하게 까만색으로 테두리를 그린다. 그렇지만 완전 다른 그림이 나온다. 사람이 사후에 우연히 전시회에서 만날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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