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줄 알고 나갔다가 여전히 바람은 찼다. 광화문 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갈 수 있는데 안내판에는 8번으로 나가라고. 반대편을 알려준다. 그래서 한참 헤맸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을 가도 아직까지 길을 잘 모른다. 오늘도 덕성여중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그 골목은 갈 때마다 운치가 있다. 겨울나무들이 멋있게 벗고 있었다.
미술관 쪽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꺾기 전, 작은 가게가 있다. "오늘도 빛나는 나에게"라는 예쁜 이름을 달고 앞에는 무조건 10000원짜리 모자들이 있다. 한두 개를 써 보고 역시나 안 어울린다. 그냥 가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나만의 코스로 결국 도착했다.
임옥상 화가도 처음에는 유화를 그렸으나 나중에는 흙을 재료로 썼다. 그에게 흙은 어머니와 같이 생명을 담은 것이자 생존을 위한 삶의 공간이다.
흙을 덮어나가는 삶은 결국 생명을 잃고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바로 기후위기로 위협받고 있지 않나. 지나친 개발, 환경파괴, 이미 우리는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권력에 각을 세우고 산 민중 미술가이다. 권력은 썩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탄생했든, 누가 잡았든 간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권력은 절대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권력은 다만 썩을 뿐이고 스스로 부러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권력 풍자 그림도 많이 그렸다. 예술과 사회의 상관 관계에 대해 "예술은 사회와의 접촉면적이 얼마나 넓고 강도가 강한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예술은 사회와 멀어지고 예술 자체의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쪽도 있으나 그는 사회 속에서 부딪히면서 사회문제를 끌어 안고 담아서 빚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성이 강한 그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다. 미술관을 나오다가 북코너에서 만난 유영국의 산 그림은 색채대비가 강한 그림인데 노란색이 행복감을 자극했다.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면 그 나름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은 색이 좋으면 검은 색만 칠할 것이고 흰색이 좋으면 흰색만 그리다가 갈 것이다. 예술은 대중의 몫. 대중이 사랑하든, 버리든 그 또한 예술한 사람의 영역밖이다. 그는 그리고 싶어서 그렸고 대중은 무엇을 선택해서 보든 또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그 또한 자유이다.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누렸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대중은 각자가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오늘 이 대작을 봤으니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