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갑질

by 신기루

하루종일 집안에서 티브이만 보다가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다가 트럭에 실려온 꽃들을 정리하는 노점상을 봤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6개 화분들이 좁은 상자 안에서 서로 옹기종기 부둥켜 안고 트럭에 실리기 직전이다. 그 중 빨간 제라늄이 눈에 띄었다.

"이거 얼마예요?"

"음...6천원 주세요."

요즘은 현금을 안 들고 다니는 세상이라

"계좌번호 주세요."

계좌로 송금을 하고 보니까 나머지 다섯 화분들은 다시 차에 실리고 천막의 지퍼가 내려간다. 저 안은 캄캄하겠지. 마지막에 가까스로 구사일생 탈출한 제라늄은 이제 자유를 찾은 건가. 농장에서 팔기 위해 꽃대를 지나치게 올려놔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서 집에 오자마자 꽃대를 잘랐다. 미안하다. 피지 못한 꽃송이들아~


그런데 꽃화분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디선가 날 선 고함이 들렸다. 가던 방향이라서 가까이 다가가니 50대 ~60대 사이로 보이는 짧달막한 남자가 경비아저씨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주 큰 데시벨은 아니지만 꾸짖는 소리가 제법 컸다. 노란 봉투를 손에 쥔 남자는 뭔가 배달착오가 있었던 건지,내용이 마음에 안 든 건지 경비 아저씨에게

"이렇게 하니까 돈 낭비가 되는 거야."라며 나를 한번 흘깃 보다가 사라진다.


경비실 안쪽을 보니까 노란 봉투 묶음을 손에 쥐고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뭔 그리 큰 죄를 지어서 입주민이 소리를 지르는 걸까. 그리고 불만이 있어도 이치를 따져서 살살 조용히 말하면 되는데..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에서 나가는 돈인데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다고 생각해서 저런 것 아닐까. 물론 조금은 부담을 하겠지만 저리 큰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칠 일인가. 경비 아저씨들이 입주민 갑질에 못해먹겠다고 할만하다.


학교에서도 보면 어떤 교장은 집안에서 구두쇠짓을 하면 될 일이지 학교살림도 구두쇠짓을 하는 이가 있다. 사야 하는 물건들을 안 사고 다른 학교에서 빌려 오게 한다든지 또는 행정실장이 구두쇠짓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안에서도 구두쇠가 있으면 빡빡하게 돌아간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모으겠나.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돈 조금 더 쓰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펑펑 써대는 것이 문제이지 이왕 사기로 했으면 쓰는 건데. 인간세상에 싸움 나는 일의 90프로 이상이 '돈'때문이다. 돈 때문에 죽이고 돈 때문에 사기 치고. 제발 좀 적당히들 하자.


아파트 입주민들 대부분은 친절하거나 무심하거나, 그중 0.001명이라도 환장하게 이상한 놈 1명 걸리면 죽을 맛이다. 학교에서도 각 반에 1명은 꼭 있다. 사회 어디서나 꼭 한두 명이 말썽이다.


집에 와서 제라늄을 베란다에 두고 바라보면서

"넌, 오늘 그 캄캄한 곳에서 끼여 자지 않아도 된단다. 시원한 베란다에서 편안히 자렴."


누군가 캄캄한 곳에서 나를 꺼내주는 행운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 캄캄한 절벽으로 밀어넣는 누군가는 없으면 좋겠다. 갑질 당하면 기분 더럽겠다. 누군가를 절벽으로 미는 행동은 안 하면 좋겠다. 그에게 선행은 못 베풀지언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3.4월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