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11시에 아침연주를 한다. 아이 손을 잡은 부부, 노년의 부부, 나 홀로족들, 젊은 부부 혹은 연애하는 남녀들로 10시 반부터는 한 떼로 몰려 콘서트홀로 올라간다. 예전에는 CD로 듣다가 요즘은 TV로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듣는데 익숙하고 보면서 듣는 건 습관이 안 되어서 콘서트홀에서도 눈을 감고 듣는다. 집에서 듣는 거나 실제 오케스트라 악기로 듣는 거나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 귀는. 집에서 들을 때 음들이 좀 뭉쳐서 들릴 때도 있어서 콘서트홀의 실제 연주가 목마르기도 할 때 가끔 찾는다. 굳이 시간을 내서 오면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주로 듣는 음악만 듣는데 연주회에 오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내 앞에 앉은 커플은 잠깐 졸다가 박수 소리에 깨서 박수를 같이 치는 모습이 웃겼다. 오늘따라 박수 칠 때 소리를 엄청 크게 지르는 남자가 있었다. '브라보'라고 했는지 발음은 들리지 않고 그냥 크게 뭐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잘 없는데 오늘은 특이하게도 샤우팅 치는 사람이 있어서 연주장의 열기가 좀 올라간 것 같다. 덕분에 앙코르 연주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빵집을 들러 빵을 사서 주린 배를 채우고 전철을 타고 왔을 텐데 오늘은 간식거리를 가지고 간 탓에 쌀과자를 씹어 먹으면서 다른 길로 와 봤다. 그랬더니 멋진 조각 작품들이 있었다. 몇 번을 왔는데도 나의 눈길을 끈 건 오늘이 처음이다. 이래서 '눈 뜬 장님'이란 말이 있나 보다. 항상 바쁘게 허겁지겁 다니다 보면 멋진 작품들을 놓칠 수가 있다.
먼저 '신빙하기'작품. 신빙 하기, 이렇게 띄어 읽으니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그 장소에서는 이해를 못 하고 사진만 찍고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 빙하기란 뜻인가 보다. 우리나라에 한자어들이 많다 보니 한자가 없을 때 좀 헛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신빙하기'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을 얘기하는 것 같다. 작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거 빙하시대에 모든 인간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 것 같다. 찰나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어찌 그리 욕심은 풍부하고 끝없을까. 그냥 하루살이에 불과한데.
신빙하기,신현중,1993,청동 계단에도 뭔가가 걸쳐 있길래 가서 보니 작품이었다. 계단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고 있는데 이 작품과 함께 찍지는 않았다. 자고로 설치물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야 한다. 저 멀리 하늘과 너무 잘 어울린다. 왼편에 있는 공연장과도 잘 어울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 비상과도 같다. 저 위에는 더 멋진, 내가 꿈꾸는 그곳이 펼쳐질 거라는 상상을 하며 뛰어오른다. 밤에는 반달로도 보일까?
계단에서,원인종,1993,스테인레스 '인간의 대지'라는 작품은 우리 인간이 두 다리로 이 땅을 걸어 다니는 것을 빗댄 것 아닐까.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양팔을 움직여 문명을 이루었다고 하듯, 이 튼튼한 두 다리야말로 인간을 직접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이 두 다리로 지구를 주름잡고 있으니. 다른 어떤 동물의 다리 보다도 날렵하고 정교하다. 오, 튼실한 대퇴부!
인간의 대지,김석, 1994, 청동 '통일조국 21세기', 이 작품은 1995년에 만들었다. 거의 20년 전에 우리는 21세기가 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지난 정권에서 김정은을 만날 당시 곧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아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다시 전운이 감돈다. 무슨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통일이여, 오라'라는 노래가사도 있지 않은가. 내 생에 북한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갈 수 있을지 꿈꿔 본다. 진짜 '통일' 네놈을 꼭 만나고 죽을 수 있을까.
통일조국21세기, 전수천, 1995, 스테인레스
예술의전당,11시 연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