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을 물 쓰듯 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또 없지만 물 쓰듯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시댁 숙모가 부엌에서 물을 콸콸콸 쓰면서 하던 말.
"나는 물은 안 아낀다. "라며 진짜 물을 시원하게 콸콸 써 재꼈다. 요즘같이 자원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시대에는 당연히 역행하는 행동이다. 반면 자원을 지독히 아끼는 사람들도 있어서 발란스는 맞게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물은 아껴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돈에 대한 태도 역시 물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같은 경우는 교사 월급이 많다고들 하고 방학도 있다고 지탄 받기도 하는 직업이지만 실제 박봉이었다. 아들 두 명을 고등학교에 보냈는데 따로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돈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첫째 아들 고3 때 돈 좀 달라고 이혼한 남편의 아버지를 찾아갔겠나. 그런데 그 손자들에게도 생까는 할아버지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 "아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했다. 직계 할아버지는 부양하면 안 되나? 그런 비인간적인 사람도 결국 돈 한 푼 못 들고 흙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 만난 시댁의 형님도 대화할 때마다 불편하다. 형님네는 부자다. 지방에 원룸 한 채에서 600~700은 수입이 나올 것 같고 아주버님도 연봉 1억은 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항상 말끝마다 "비싸다, 비싸."라는 말을 달고 산다. 내 동생은 기초수급자다. 남편도 없고 몸도 아파서 수급자가 되었다. 그 동생도 "비싸다. 비싸."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둘은 경제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데 똑같은 말을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형님같은 경우 영화관의 조조 비용도 비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딱히 취미활동에 돈 쓰는 것도 없고 산책하면서 운동하는 게 전부다. 앞으로 나이는 더 먹어갈 텐데 취미가 딱히 없으니 얼마나 더 지루해질까. 사람도 좋아하지 않아서 별로 만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집안의 고양이도 아니고. 너무 불쌍해 보였다. 나는 통장이 넉넉한 적이 없어서 비어도 별로 겁내지 않고 살았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마이너스를 쓰다가 보너스가 나오면 갚아나가는 식이었다. 지금은 연금생활자인데 거의 다 쓰는 편이다. 오늘도 공연 보러 갈 거고 내일도 갈 거고. 어제 받은 명절 스트레스를 풀려면 나가야 한다. 취미로 큰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자기 형편에 맞게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텐데. 우리 형님은 나보다 2살이나 어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너무 안타깝다. 시간과 돈이 있는데도 그러니까 더 안타깝다.
그래서 부자를 가까이에서 본 결과, 돈돈돈 하면서 한 푼도 안 쓰는 걸 낙으로 삼는 걸로 보아 돈이 진짜 없이 사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 물질적 풍요 위에 정신적 빈곤이라고나 할까. 돈을 더 사랑하지 말고 나를 더 사랑하며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