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의 유작으로 알려진 영화 '행복의 나라'를 보러 갔다. 그를 영화관 스크린에서 보는 마지막 영화라는 의미에서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선균'은 지금 밖으로 나가면 그냥 현존할 것만 같은 실체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부재'다. 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딱히 팬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슈가 되더니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자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영상들을 보자 '참, 진지하게 또는 장난스럽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연기한 '박흥주'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영화 첫머리에 박정희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마구 달려간 곳이 비탈진 산동네였다. '어? 저쪽으로 왜 가지?' 그곳에는 아내가 있었고 딸이 살고 있었다. '당분간 못 돌아올 거라고.'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후 그는 10.26 사건 공모 및 동조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배우 조정석이 그의 변호를 맡으면서 사형은 면하게 하려고 했으나 군인으로서 명령체계에 의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와 다시 똑같은 상황에서도 똑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판 결과에 회의를 품게 된다. 그렇지만 당시 전두환이 주도하는 군인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전두환을 찾아가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이 장면은 비현실적 장면인데 판타지로 받아들였다. 이 부분을 역사왜곡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감독이 어떤 메시지 전달을 위해 집어넣었다고 이해했다. 영화를 보면서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골프장에서 전두환은 거만하고 폭력적이며 변호사는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박흥주를 살려만 달라고 호소'하는 비굴함을 보여주는 그 대비가 힘없는 약자들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12.12사태를 겪으면서 5,18로 이어지는 폭력이 쭈욱 전개될 거란 걸 그 장면에서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흥주 대령'이 정보부장 비서로서 당시 박정희 정권 시절 나쁜 짓을 많이 한 곳이므로 그 또한 같이 취급할 수는 있으나 그냥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온전히 자유의지가 없이 어떤 구조물에 끼인 소모품으로 소용되다가 죽었다는 의미에서 안타까웠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로 구르다가 죽게 되는 인간을 본 느낌이었다. 그의 과오는 일단 제쳐두고. 그를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가 청렴결백했다고 하는 시각도 있다. 그것도 칭찬받을만하다. 그 당시 그 위치에서 사리사욕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려간 죽음들이 참 많다. 박흥주에게 죽임을 당한 군인도 있을 것이고. 모든 죽음 하나하나 안타깝다.
때로는 내가 '박흥주'가 될 수도 있고 '박흥주'에게 총을 맞은 사람도 될 수 있다. 한 번쯤 '박흥주'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지극히 한 '인간'의 관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