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문

by 신기루

영화 '파문'에서 주인공 요리코는 한 집안에서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가장이다. 먼저 시아버지 병수발을 도맡아야 하고 남편은 가출 후 암에 걸렸다고 다시 돌아온다. 아들은 마뜩잖은 며느리를 데리고 오고 주인공 요리코가 '헤어지라'고 한 말을 아들에게 이른다고 협박한다. "아들은 그런 말을 엄마가 한다면 엄마와 '연'을 끊겠다고 했다면서."

여자들이 한 가정에서 놓인 위치가 그렇다. 시부모에게도 잘해야 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자식도 걷워야 하고. 과거 플라멩코 춤을 추며 자유로웠던 '나', ' 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라고.


지금, 2025, 현시대는 크게 바뀌었을까?

남자들이 부엌에 더 많이 들어가고 육아도 더 많이 하고 친가보다 장인, 장모와 더 친하게 지내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나 역시 예전 시어머니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가급적 왕래를 강요하지 않고 무한자유를 주려고 한다.

도와달라고 하는 부분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고 가급적 각자 살아야 한다. 영화에 나오는 '간병'도 요양원에서 할 것 같고. 남편이 집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면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을 것이고, 자식이 누구와 결혼하든 그것은 그의 선택일 것이고.

영화에서 얽매는 사건들은 다른 방식으로 풀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에서 '사이비 종교'에 맹신하는 그녀를 보면 현실이 내 생각과 다르게 굴러갈 때 뭔가에 기대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생긴다. 현실이 비합리적일 때 무속은 더욱 강렬히 다가온다. 그녀가 믿는 사이비종교도 마찬가지다. 생명수를 계속 고가로 사게 만들고 그 돈벌이에 끌려가며 생명수를 계속 마신다. 우리가 믿는 종교 대부분은 구복신앙이다. 가끔은 무턱대고 빌고 싶을 때가 있다. '제발'두 손 모아 싹싹 간절히 빌면 될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 우리의 내면을 그녀의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또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서로 소통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동일본대지진 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집안을 쓰레기창고로 만들어 놓고 살지만 직장에서는 청소부로 일한다. 그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자 집에서 기르는 거북이를 도와주려고 방문한 집에서 주인공은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고 집을 치워준다. 이전에 주인공 요리코의 고통을 같이 나누었던 그녀와 서로 소통, 공감하는 장면에서 인간적 교감을 볼 수 있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다. 오히려 타인으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얻어내는 경우가 있다. 비록 사이비종교지만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주면서 환히 웃던 주인공 요리코. 이때 남편은 자신에게 공감해 주지 못하는 아내를 탓한다. 제멋대로 가출하여 상처 준 사람이 할 말인가 싶다.


또 영화에서 '고산수'라고 일본식 정원이 나온다. 모래와 돌로 이루어졌는데 모래로 물결무늬를 만들어서 물이 없는데 있는 것 같고, 있는데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우리 삶에서도 머릿속에는 있는데 실제는 없고, 없다고 생각하지만 있는 것. 우리 삶은 무한인 것 같으면서 유한하고, 유한 같으면서 또 무한하기도 하다.

지난번 1월 1일 새해를 한 번 맞이하고 그날이 첫날이었는데 다시 음력 설날이 되니 첫날인가 싶고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2025. 글 쓰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