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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글모음

대화가 너무 어렵다

by 신기루

3년 정도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안 친구로 20년 정도 알고 지냈다. 이 친구는 자기가 궁금한 게 있을 때만 전화하는 친구다. '자기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여러 명의 조언자 중 1명이 나인 거다.

얼마 전에 단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와서 오히려 놀랐던 적이 있었다.

최근 다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들 취업 때문에 생긴 걱정거리를 비슷한 처지인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였다.

그 친구를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려고 만났는데 자기 신변에 일어난 사소한 일들을 끝도 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거다. 나는 가끔 질문을 할 뿐. 그나마 질문도 안 하면 내리 듣고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최근 뜨개질을 하는데 뜨개질 선생님의 집을 방문해서 그 아들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 집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다. 생활이 참 지루한 모양이다. 그게 무슨 이벤트라고.

또 다른 이야기는 자기 집 농장에서 지은 농작물을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갖다 주고 거기서 음식을 해 먹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이불을 사서 딸 옆에서 잤다는 이야기다.

음....응....하고 듣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아들 취업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정작 중요한 고민을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하긴 골치 아픈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수다를 떨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취준생 뒷바라지를 한 입장에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 주고 헤어졌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둘이 밀도 있는 대화를 한 게 없다.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며 공감하였는가? 서로의 고민과 상처를 알게 되었는가?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뿐 '너'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나는...으로 이어진 1인칭 시점의 일기를 듣고 왔다. 그것도 하나의 주제가 아닌 잡화점식으로 늘어 놓는 산만한 일기.

잠시 내 귀를 빌려줬을 뿐. 가끔 사람 아니고 큰 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친구는 슬며시 자신의 '부'를 자랑한다. 남편이 모범납세자고 카페에서 월세 얼마를 받고 며느리에게 분양대금 1억을 도와줬고 개인연금을 얼마씩 받는다는 둥. 나 같으면 같은 내용이라도 얘기 안 할 것 같은데.

점점 아줌마들 수다가 싫어진다. 직장 다닐 때는 서로 애 키우는 얘기, 업무상 힘든 얘기 등 공감대가 있었는데 퇴직 후 만난 그녀들과는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물론 각자의 삶이 다르고 꽂힌 게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풍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 지 모르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마구 배설하는 게 대화가 아니고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게 대화 아닐까? 제발 넌 뭐 하니? 넌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어봐. 물론 답하는 사람 역시 혼자 떠들지 말고 '근데 너는?'이라는 질문을 해야지.

혼자 책 한 권을 읽어주려고 하는 친절한(?) 화법은 정말 싫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들은 예전에도 같은 화법이었다. 점점 내가 견디기 어려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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