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신나게 놀 줄만 알았냐?
은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아프더니 이내 하늘나라로 갔고. 아들이 백수로 퍼져 있어서 긴급조치(취업 뒷바라지)를 2년간 했고 드디어 내 집으로 돌아와 쉬려고 했더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모, 엄마가 계란장을 하는데 껍질째로 넣었어요."
오. 갑자기 뇌에 사이렌이 울린다.
급하게 대구로 내려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58세인데 벌써... 약을 먹으면 진행 속도를 늦출 뿐 개선책은 아니다.
누가 '치매에 걸릴래? 암에 걸릴래?'라고 물으면 암에 걸려서 죽는 게 낫겠다고 항상 생각했지만
막상 동생은 암보다는 차라리 치매가 낫다는 위로를 했다. 물론 나라면 점점 의식이 소멸되는 치매가 암보다 싫다. 80이 넘어서 암에 걸리면 순응해야지. 그전에는 좀 억울할 듯.
암튼 다시 기나긴 간병이 시작되었다. 당장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니까 전화도 하고 일상을 챙기는 수준이지만. 일단 미래는 모르겠다. 잠시 접어두기로.
나의 과제는 끝이 없는 듯. 부모 살아계실 때는 장녀로서 장녀 역할을 해야 했고. 자식 건사를 해야 했고. 이제는 동생을 보살펴야 하고 조카까지.
은퇴 후 단 하루도 홀가분한 날이 없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죽을 때까지 형벌을 받는 모양이다.
아주 가끔, 유일한 숨구멍, 산책과 책 읽기와 영화 보는 것들이 유일한 휴식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