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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글모음

신성한 나무의 씨앗

by 신기루

인도의 보리수나무는 새가 그 씨앗을 다른 나무 가지에 두면 자라서 땅에 뿌리를 내려 숙주인 나무를 죽이고 살아간다.

영화의 도입부에 이런 내용의 자막이 나온다. 영화 내용과 제목을 연결해 보겠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죽은 여자를 위해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공권력을 사용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실제 sns영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히잡을 쓰지 않아 죽은 여자와 거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의 씨앗처럼 미래에 더 나은 세상이 오게 할 이들이란 뜻이 아닐까.

영화는 국가의 폭력을 SNS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폭력과 대비해서 보여준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은 수사판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하는 일에 일체화되어 체제순응형 인간이 된다.

어느 날 자신의 권총이 집안에서 분실되자 아내와 두 딸을 의심한다. 20년의 경력이 끝나고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아내와 두 딸을 심문하게 하고 직접 심문하기도 한다.

국가도 국민을 위한답시고 폭력을 행사하듯 가정에서 '아버지'도 자기 권위와 생존을 위해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공권력의 얼굴을 아버지를 통해 보여준다. 가부장은 어찌 보면 사회에서 주어지는 힘만큼 부여되는 것 같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아버지도 민주적 태도를 보이지만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아버지도 딱 그만큼의 얼굴을 지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의 얼굴로 살아가기 쉽다. 과거의 부모들은 민주화의 수준만큼, 지금의 우리 세대는 또 그만큼, 우리의 자식들은 또 그 사회의 민주화 수준만큼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3시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였다.

감독은 유럽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고 출연 배우들도 두려운 상황에서 찍어야 했고 영화촬영도 몰래 했다고 하니 보고 난 다음에도 오싹하다.

중간중간 나오는 시민에 대한 실제 폭력적 sns영상 때문에 매우 공포스러웠다.

우리의 이 평화도 언제든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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