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을 내 주는

by 신기루

오랜만에 엄마가 우리집에 온다. 6개월 동안 같이 있을 때도 안방을 썼다. 남편이 기꺼이 안방을 내줬다. 오늘도 자기 이불과 베개를 작은 방으로 옮기고 새 이불을 깔고 베개도 갖다 놨다. 누가 장모님이 오신다고 자기 방을 선뜻 내줄까. 물론 내가 거실에서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다가 자고 엄마도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를 불편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안방을 그냥 내 드린다. 엄마와 대화는 최소한만 하면 된다. 며칠 머물면서 치과 치료를 마치면 다시 대구로 내려간다.


엄마는 의도치 않게 자식들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한 분이다.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싹싹이'이라고 한다. 자면서 '싹싹' 긁어대서 아침이면 손톱에 피가 묻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지금도 이틀에 한 번씩 알레르기약을 먹는다. 피부에 발진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때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을까. 최근 명퇴 결심을 하고 알레르기 반응이 부쩍 줄었다. 그것만 봐도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란 말이 맞는 거다.


엄마는 그렇게 어린 시절 나의 귀청을 괴롭힌 사람이다. 직접적인 욕설을 들은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욕설을 한 거다. 사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하루 종일 욕을 했다. 그래서 엄마가 있는 동안 귀마개를 한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목소리에서 반응을 일으킨다. 화가 난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다고 하니까 6개월을 같이 있었다. 삼시세끼 하면서. 그런데 내 동생은 놀면서도 한 달도 못 견디고 엄마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더 잘 버틴 거다. 동생도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똑같은 처지라고 보면 된다. 그냥 어떤 말도 듣기가 싫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진다. 어렸을 때만 해도 완전한 독립이 안 된 것 같다. 그냥 엄마니까 당연히 잔소리는 하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삼십 대 때만 해도 육아를 도움받는 처지라 엄마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엄마가 뭔가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게 되었다. 자식들이 주도하다 보니까 엄마의 목소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안 듣고 싶다. 그 목소리. 정작 본인만 모른다. 본인의 과오가 이제야 본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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