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큰 구매

유럽 여행 일기

by isseozn

나는 지금 유럽 여행 중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은 나에게 쇼핑데이였다. 곧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하기는 하지만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쇼핑을 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내 옷장의 1/2은 차지하는 자라와 너무 좋아하는 마시모두띠가 스페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옷의 종류도 훨씬 다양하고 가격도 크게는 50%까지 저렴하다고 해서 스페인에 오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쇼핑할 생각에 너무나 설렜었다.


마시모두띠를 먼저 가면 눈이 너무 높아져 자라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못할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에 자라를 갔다가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마시모두띠에 가기로 했다.


이 날을 위해 캐리어의 반을 비워오기도 했고 보고 가방까지 챙겨 왔지만 그래도 아주 신중하게 쇼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에이 뭐 여행 온 건데 사서 잘 안 입으면 뭐 어때~ 다 경험이지 싶기도 했다. 나는 사실 원래도 옷을 살 때 혼자서는 잘 결정을 못하는 타입이다. 꼭 누군가의 확인이 있어야만 옷을 살 수 있다. 혹은 하나를 사기 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어쩔 때는 너무 고민하다가 지쳐서 못 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오늘은 여행 온 거니까 마음에 들면 아주 화끈하게 사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오전에는 지중해를 좀 보다가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규모가 큰 자라 매장으로 향했다.

자라에 들어가면서 아주 비장하게 선글라스를 벗고 휴대폰을 가방 안 쪽에 쑤셔 넣었다. 여성 옷은 2층으로 나뉘어있었고 매장이 원형으로 되어있어 아주 오른쪽으로 크게 돌고 안쪽을 봐야겠다는 작전까지 금세 세웠다.

그리고 쇼핑을 시작했다. 거의 뭐 쇼핑 전문가처럼 옷들을 휙 보고 원하는 건 딱 집어 팔에 착 걸었다.

그렇게 1층 한 바퀴를 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도 마찬가지로 시계 방향으로 이동했다.


고른 옷들을 들고 피팅룸으로 당당하게 입장했다. 상의와 하의를 나눠 옷을 걸고 하나씩 입어보기 시작했다.


고른 옷이 나와 잘 어울리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반면 실패하면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서 옷을 추렸다. 그리고 나가서 한 바퀴 더 돌았다. 혹시 놓친 옷이 있을까 하고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쇼핑에 진심인 내가 너무나 웃기다.


역시나 한 바퀴 더 도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스커트와 니트가 보였다.

다시 피팅룸으로 들어가 입어보았다. 스커트는 사이즈가 고민되어 한참을 입어보다가 총 5벌을 들고 나왔다.

100유로가 살짝 넘는 가격이라 택스프리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 순서는 드디어 마시모두띠였다.

우선 자라에서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점심으로 추로스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추로스 집 안에 한국인 밖에 없었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이 참 정겨웠다.

나는 사실 원래 아메리카노보다는 플랫화이트나 차이티라테 같은 것들을 좋아해 유럽에 오고 나서는 한 번도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얼른 츄러스를 먹고서는 마시모두띠로 갔다.


매장 입구에서부터 너무 아름다운 아이템들이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점원들에게 몇 차례 도움을 요청했는데 다들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주어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재킷이랑 롱부츠가 아른거렸지만 더 고가의 아이템들은 블랙프라이데이를 노리기로 하고 니트와 바지, 그리고 스커트를 피팅해 보았다.

역시나 너무 예뻤다. 자라에서 산 옷들이랑 코디도 맞추어 보았다.

예전에는 그냥 귀여운 아이템 하나씩을 구매했는데 그러다 보니 매칭이 좀 어려워 옷을 잘 못 입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제는 옷을 살 때 한 벌로 사거나 내 옷들과의 코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카디건과 너무 예쁜 컬러의 슬랙스 바지를 샀다. 계산대에서 꽤 나이 들어 보이는 직원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 주어서 참 기뻤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전 여행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여권을 보고 한국어로 인사해 주어 괜히 뿌듯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국 문화가 여기저기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괜히 뭉클했다. 아시아의 그 작은 나라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니!


사실 마시모두띠에서 옷을 고르고 결제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시모두띠는 가장 저렴한 아이템이 65유로 정도였고 약간 어른스러운 느낌이라 내가 평소 입던 옷들과는 달랐다. 한국에서는 매장에 들어가면 가격이 무서워서 옷을 들춰보기도 겁났었다. 나는 가난한 자취하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쇼핑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옷을 사려고 하니까 심장이 막 두근거리면서 사는 게 맞는 선택인지 자꾸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스페인에 오면 꼭 마시모두띠에서 옷을 사고 싶었다. 쇼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알바해서 나름대로 돈을 많이 준비하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결제를 했다.

결제하고 나오니까 심장이 더 두근거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옷을 사는 게 그렇게 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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